우석훈 경제학자

지난 겨울방학 때에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우리 집 두 어린이가 돌봄교실을 따로 하지 않고 주로 집에 있었다. 나중에는 요일이 다 헷갈릴 정도였다. 생전 그런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난 겨울방학은 봄방학과 통합되어 두 달이나 되었다. 그래도 둘 다 기저귀 갈아야 하던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스스로를 달래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해롱해롱하는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전에는 낮에 가끔 사람들하고 차도 마시고 그랬는데, 그것도 일종의 ‘럭셔리’였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우리 집 어린이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었다. 개학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요일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힘든 것은 같았다. 방학 때 만나야 할 사람이나 회의 같은 것을 다 개학 후로 미루어놓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아진 것도 있기는 하다. 여전히 정신없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상황을 좀 살펴보았다.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가 3학년이 되면서 아내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기간이 끝났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찾아보았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9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근로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이 조항에 따라 아내는 지난 1년 동안 단축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게 끝났다. 한국의 출퇴근 시간은 편도 1시간 정도가 평균이다. 아내의 경우는 그보다 약간 더 길고, 퇴근 시간은 훨씬 더 길다. 어쩔 수 없이 저녁을 준비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간편식이라도 사다놓거나 혹은 배달이라도 시켜놓아야 한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보통은 태권도장 차를 타고 하교하는데, 돌아오면 간식 내놓으라고 난리다. 남자애 둘이라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그리고 돌아서면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매일매일 음식 재료가 냉장고에 딱 있는 것은 아니다. 며칠에 한 번은 어린이 둘을 데리고 슈퍼마켓에 가서 양손 가득 뭘 사들고 들어와야 한다.

주40시간 아내에 내가 죽을 맛

이렇게 지내다 보니까 방학이 끝나고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몽롱하다. 솔직히 저녁때 친구 만나서 아무 생각 없이 소주나 한잔 마시고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나지만, 호사스러운 상상일 뿐이다. 그 와중에 아내는 일이 몰려 최근 거의 매주 지방 출장을 갔다. 다음주의 내 일정을 보니까 별게 없다. 좀 쉬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뿔싸! 일주일간 해외 출장이다. 오 마이 갓!

그렇다고 아내 회사가 특별히 격무를 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을 일할 뿐인데도, 요즘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주 35시간과 주 40시간의 격차가 이렇게 큰 건지, 사실 처음 알았다. 내가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야근은 기본이고, 한 달에 몇 번씩은 직원들과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는 당연히 없었다. 그 시절의 나라면 주 40시간 일해 무슨 성과를 내고 공을 세우겠느냐, 그렇게 얄미운 말을 틱틱 했을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의 나였다. 이제는 주 40시간도 너무 길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 와중에 내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진짜 죽을 맛이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고, 연이어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중이다. 인생 말년에 개고생이다. 주 69시간은 너무 길고, 주 60시간 정도로 하자, 그런 얘기들을 높은 분들이 하고 계신다. 몰리다 몰린 노동자들이 일종의 아프지 않을 권리 같은 보건권을 방어막으로 쓰고 있다. “일하다 죽고 싶지 않다”, 이게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헌법의 행복추구권 같은 고상한 권리가 아니라 생존권 차원의 얘기다. 아이를 낳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산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권’, 그것도 인간의 보편적 권리가 아닐까? 그러면 육아도 일종의 권리일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 애국을, 그런 얘기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육아기, 주 40시간도 너무 길다. 다른 선진국들은 지금 주 4일제 논의가 한참인데, 주 60시간이냐, 주 69시간이냐, 그런 얘기 하는 거 보니까 “소는 누가 키우나”, 그런 옛날 농담이 생각났다.

선진국은 주4일제 얘기하는데…

출산한 직원들만 노동시간을 줄여준다고 갑자기 출산율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출산 아니 연애라도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뭐라도 결과가 생길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주 69시간을 탐하다가는 매년 도시 몇 개씩 없어지는 절망적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출산과 육아 생각하면 주 40시간도 많다. ‘삼미남’, 삼십대 미혼 남성, 절반이란다. 이거 어쩔겨! 뭔 휴가 타령인지 모르겠다. 영화 <곡성>에서 절박해진 소녀가 경찰 아빠에게 이렇게 외쳤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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