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운동의 쌓여가는 위기,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2006년 경향신문은 창간 60년 기획으로 ‘진보개혁의 위기’를 4개월에 걸쳐 연재했다. 진보진영의 주요 세력들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을 비롯해 추구하는 가치와 의제, 전략 등을 두루 평가한다. 뼈아픈 지적들이 이어지는데, “무능한 진보개혁 세력” “권력 맛본 뒤 퇴화” “기득권이 된 민주세력” 등이 그것이다. 현시점에서 이러한 지적들은 꽤나 당혹스럽다. 지난 문재인 정부하에서 진보적 시민운동에 쏟아진 비판, “권력이 된 시민단체” “갈림길에 선 시민운동, 시민단체는 권력이 됐을까” 등 사실상 똑같은 지적들이기 때문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16년의 시차(지난해 기준)를 두고도 동일한 비판이 거듭된다는 점 외에도 이러한 비판이 민주당 집권기에만 등장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왜 이 시기에 위기담론이 대두되는 것일까? 진보운동이 비판 기능을 상실하고 존재감을 잃는 것은 진보운동이 민주당 정부와 프로그램 차원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각론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프로그램은 사실상 동일하고, 경제 관련 의제는 때때로 상이하나 핵심적이지 않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가 적다. 인적 친화성 즉, 진보운동의 엘리트들이 민주당으로 흡수·동원된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진보운동과 민주당은 때론 긴장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적’을 공유한 탓에 대체로 동반자가 된다. 이러한 친화성들은 진보운동 내에 잠복하여 스스로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깎아먹고 있다. 그런데 ‘적’으로 상정된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곧장 은폐된다. 다시 진보운동의 비판 기능이 작동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진보운동의 핵심 기능이 제한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처한 것이지만, 보수라는 적과 싸우는 민주화 프로젝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위기는 끊임없이 은폐·유예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진보운동은 차별성을 잃었을뿐더러 미래지향적인 담론이나 비전을 주조하지 못하고 의제생산능력, 주도력, 영향력, 신뢰도를 상실하는 등 전반적인 부전상태에 빠졌다.

16년의 시차를 두고 위기의 신호가 울렸지만 또다시 익숙한 싸움으로 덮어씌워지고 있다. 진보운동이 갑자기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도 아닌데 비판과 위기 호명이 사라졌다. 진보운동이 비판과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복무하는 듯 보이기에 위기담론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현 정부의 반복되는 실책과 퇴행적 행보를 탓할 수 있지만, 위기담론이 사라졌다고 위기 그 자체가 없는 듯 행세할 수는 없다. 이미 진보운동은 2006년의 위기를 이명박 정부에 맞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통해 감췄다. 문재인 정부에서 불거졌던 위기담론은 윤석열 정부와의 대결을 통해 숨길 요량으로 보인다. 거리에 운집하는 대중이라는 착시로 진보운동 내 쌓여가는 위기를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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