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이용하는 사람들

이융희 문화연구자

지난 며칠 동안 통신판매 중개 플랫폼 ‘와디즈’가 시끄러웠다. 4억원 이상의 금액을 모은 챗GPT 활용 비법서가 사기냐 아니냐 공방이 일었던 탓이다. 비법서의 제작자는 자신들을 “실리콘밸리에서 왔다”고 밝혀 마치 실리콘밸리의 개발자 출신인 것처럼 착각하게 할 법한 멘트로 소개했지만, 실상은 그저 6일 동안 교류 모임 행사에 참여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을 ‘상위 1%’라고 자처했다. 사람들은 책과 필진의 관계를 바탕으로 챗GPT와 수익화, 두 가지 분야를 바탕으로 재력이나 프로그래밍 능력이 상위 1%라고 여기며 투자를 진행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그들이 스스로를 상위 1%라고 자평한 것은 유명대 재학생이었기 때문이란 것이 밝혀졌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그들의 과장된 홍보 멘트가 정정된 건 와디즈 신뢰안전팀의 대응 때문이었다. 결국 몇 차례의 소명이 이루어졌으나 해당 펀딩의 원론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마침내 펀딩은 중단되었다.

내가 흥미로워했던 건 펀딩의 내용이나 펀딩이 중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지금도 와디즈 플랫폼에서 해당 펀딩의 커뮤니티나 새 소식란에 가보면 누리꾼들이 남긴 수백 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펀딩’ 표식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젊고 의욕적이며 똑똑한 학생들의 신선한 기획이 중단된 것이 아쉽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 차례의 소명부터 펀딩 종료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은 결국 초기 광고가 과장광고였음이 드러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 사람들은 끝내 프로젝트와 해당 팀을 옹호하고,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리라 자평하는 것일까. 그 우려로 가득한 목소리들 속에서 뚜렷한 공포감이 읽힌다.

해당 펀딩은 그저 새로운 시대의 기술을 가르쳐주겠노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제시한 것은 ‘수입을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챗GPT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펀딩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유지하면서 아주 가벼운 시도와 조작만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오는 충실한 노예를 얻으리라고 착각한 것이다. 결국 이 펀딩이 겨냥한 것은 당신도 자본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허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허상이 유효할 수 있는 까닭은 사회가 기술적으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새겨보면 스마트폰이 발명된 것이 20년이 지나지 않았으나 그동안 사회는 얼마나 크게 변화하였는가. 거기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메타버스부터 비트코인·인공지능까지 사회를 더욱 혁신적으로 바꿀 기술들이 끊임없이 폭발하고 있다. 그런데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기술 사회의 갑작스러운 도래까지 있었으니….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기술을 모르면 세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기술 발전은 가속도가 붙었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도래할 것이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도태될 것이며 사람들의 공포감을 노리고 허황된 이야기들이 만연할 것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속는 사람들을 마냥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개인의 노력만으론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알려주고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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