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감각을 지키려면

최성용 청년연구자

‘커먼센스’라는 영단어는 보통 ‘상식’ 또는 ‘공통감각’으로 번역된다. 두 단어는 얼핏 달라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상식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대다수가 공유하는 지식이나 가치들을 뜻하는데, 이를 그 사회가 공유하는 ‘공통의 감각’이라 일컬을 수 있다. 한 사회의 공통감각은 통용 가능한 언어와 상징을 재료로 제공한다. 가령 지금 내가 칼럼을 쓰는 일이 그렇다. 칼럼은 특정 집단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막연한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다. 그렇다면 전문용어 대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상언어를 사용하면서,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험이나 기억을 글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4월이면 제주 4·3사건이나 4·16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두 사건을 소상히 알지 못하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그것이 어떤 사건이며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안다. 그렇다면 최소한 들어는 보았을 경험과 기억을 재료로 삼아 가치 판단이 필요한 현재의 이슈들과 연결함으로써, 다수의 사람에게 의미가 통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게 공적인 말하기란 한 사회의 공통감각에 의지해서 상식적으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다만 공통감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 비극과 약자, 소수자의 경험과 기억이 상식이 될 수 있도록 공통감각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 나는 그것이 칼럼 쓰기 같은 공적 말하기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엔 공통감각의 품귀현상이 심각하다. 공통감각이 넓을수록 글의 재료로 쓸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풍부해지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정치가 공통감각을 좁히고 있는 탓이다.

당장 강제동원 문제 해법과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의 행보가 그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축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다며 일제 식민지배의 문제를 ‘피해자 탓’으로 돌린 바 있다. 그 직후 ‘굴욕외교’ 소리가 나올 만큼 최소한의 타협안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일제 식민지배 문제를 청산하려는 ‘외교적 해법’을 발표했다.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을 계승하고 ‘친일’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의’를 거절하는 건 상식이자 공통감각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공통감각을 배신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역사를 상식이자 공통의 기억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는 충북도지사의 발언은 식민지배의 부정의가 더 이상 합의된 상식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이런 역사부정에 더불어민주당도 책임이 있다. 지난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가 불매운동이 커지자 그에 영합했다. 식민지배의 역사가 민주당의 정치적 입지를 정당화하는 재료로 활용될수록, 그에 대한 반감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냉소하는 인식도 커진다. 민주당이 정부를 친일이라 비판할수록 친일이란 말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그렇게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마저 공통감각이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는 ‘일부’의 상식이 되어버린다.

무너지는 상식과 공통감각을 지키려면 소극적인 태도 대신에 적극적인 의미 확장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는 미래를 위해 잊어야 할 과거도, 정부를 향한 정치적 공세의 기회도 아니다. ‘친일’이란 단어에 담기지 않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강제동원 문제는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부터 겪고 있는 부정의한 식민지배의 유산과 겹쳐 있다. 강제로 이주하여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일했던 역사는 조정훈 의원(시대전환)에게 월 100만원으로 이주노동자를 활용하자는 영감을 준 싱가포르와 홍콩의 이주노동 문제를 상기시켜준다. 강제동원의 원인인 일제의 침략전쟁은 현재 대만과 한반도가 겪고 있는 전쟁위기와 평화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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