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로 펼친 스포츠의 힘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지금 시점 올해의 콘텐츠는 <슬램덩크>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여전히 주간 관객 수가 5위이고, 누적 관객은 450만명에 이른다. 단행본은 지난 2월에 100만부 판매를 넘겼고 최근 150만부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한 달 이상 기다리던 독자들이 최근에야 누락 없는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아보게 된 상황이다.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줄지어 장악하던 기세는 줄었지만, 여전히 100위권 내외에 시리즈 도서 20여권이 자리하고 있으니 고전의 힘, 스포츠의 에너지를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워낙 압도적인 상황이라 이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뭐든 책부터 찾아 배우고 익히고 즐기는 독자라면 스포츠 역시 책으로 마주할 터, 어떤 책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구성, 구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점 분류에서 스포츠의 금·은·동은 축구·야구·농구다. 근래 배구 인기가 크게 늘며 매해 스카우팅 리포트가 따로 발간되는 등 현실의 변화가 있지만, 그간 쌓인 책의 종수 등이 반영된 상황이라 하겠다. 종목별로 나오는 책의 성향에도 차이가 있는데, 축구는 최근 들어 해외 선수를 중심으로 자서전과 평전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실제로 축구를 하며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이 많으니 관련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야구의 경우에는 규칙, 문화, 이야기를 담은 책이 다수인데, 한 번에 익히기 어려운 복잡한 규칙, 다른 종목에 비해 경기 수가 훨씬 많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통계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텐데, <슬램덩크>로 NBA와 KBL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하니 농구의 분발도 기대한다.

많고 많은 책 가운데 종목별로 한 권씩만 꼽아본다면 어떤 책을 고를 수 있을까. 우선 축구에서는 토털사커로 널리 알려진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의 자서전 <마이 턴(My Turn)>(마티)을 꼽는다. 2016년 세상을 떠난 그는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정점에 오른 인물인데,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현대 축구의 전술적 전환점을 만들어냈고, 그 영향은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펩 과르디올라로 연결된다. 야구에서는 팬을 포함한 모든 야구인의 필독서로 꼽히는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민음인)를 피할 수 없겠다. 경기와 산업을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부터 왜 우리 팀이 오늘도 이렇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응원을 이어가는 이들까지, 야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정확하고도 철학적인 분석으로 설명하는 압도적 저작이다. 농구는 앞서 이야기한 책을 넘어설 책을 고르는 게 불가능하겠다.

주말이면 삼진을 당하러 야구장에 나서는 사회인 야구 초년생이자, 학창시절 동네 축구로 단련되었으나 이제는 축구화도 없는 은퇴 동호인으로서 스포츠 관련 책을 딱 한 권 꼽자면, 드래프트 1위부터 메이저리거에 이르기까지 촉망받는 선수로 활약하며 프로의 세계에 진출했으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지금은 유니폼을 벗고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는 6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시 일어나 걷는다>(돌베개)를 고르고 싶다. 스포츠는 대개 순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 앞에는 엄청난 땀이, 그 뒤에도 스포츠 바깥의 삶이 이어지지만, 승부 너머는 잘 잊히고 대체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도 야구 선수로 활약하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저자는 “해낼 수 없다고 애태울 필요도 없고 포기할 일도 아”니라며, “실패하건 성공하건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인생은 지금부터”라 말한다. 많은 이들이 <슬램덩크>에 환호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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