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도서정가제는 안 될까요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최근 출판계에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책값이다. 대형 온라인 서점 세 곳이 유료 배송비 인상과 무료 배송 적용 기준 상향을 이달 안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물가 상승과 이익 저하 등이 고려된 조치일 텐데, 1만원 이상 구매하면 배송비를 무료로 해주던 기준이 1만5000원으로 올라가 이후 책값에 영향을 미칠 듯하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독자가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이 적용된 ‘판매가’ 1만5000원 미만 도서를 구매할 때 배송료를 2500원 내야 한다면 이는 적지 않은 부담일 테고, 당장 구매하기보다는 함께 살 책을 기다려 한 번에 결제하며 배송료를 아끼려 할 게 당연하니, 책값을 정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애매하게 1만5000원보다 조금 낮은 판매가가 적용되는 상황을 피해 아예 1만5000원 이상이 되도록 정가를 정할 가능성이 높겠다.

정리하면 정가 1만6500원의 책은 10% 할인을 적용하여 판매가가 1만4850원이 되니 배송료 부담이 생기는데, 정가 1만7000원이 되면 판매가가 1만5300원이니, 출판사에서는 후자로 정가를 정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가 1만6500원 도서는 이후 신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도서 재정가도 복잡한 사안이다. 책은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아 동일한 책은 어느 곳에서나 같은 정가로 판매해야 한다(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정가의 15% 내에서 가격 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제공할 수 있고, 가격 할인은 10%까지만 가능하다). 그런데 판매가 미진하여 소진이 불가능한 재고의 경우 가격을 낮춰 판매를 한다거나 출간된 지 오래되어 비용 상승을 반영하여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경우 등등을 고려하여 출간 12개월이 지난 책의 경우 출판사가 정가를 변경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가 바로 도서 재정가다.

물론 동일한 책을 판매처나 상황에 따라 다른 정가로 판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회 전략은 있다. 같은 책이지만 별도의 책으로 등록하여 다른 정가를 매기는 방식이라거나 도서 유통의 허점을 활용하여 재정가 도서의 공급 시점을 달리하는 식인데, 최근 관련 사례가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 책값 관련 이야기는 모두 도서정가제를 기반으로 한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올해 국민 제안 첫 토론 주제로 도서정가제를 선정하여 국민참여 토론을 진행했는데, 참여자 다수가 도서정가제의 변경이 필요하며 할인 판매가 가능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도서정가제는 개정 시한이 돌아올 때마다 논란을 빚었고 출판 및 서점 업계와 소비자의 입장 차이가 확연한 데다, 업계 내에서도 필요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을 테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빠진 부분은 분명해 보인다.

하나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완전 도서정가제로 가는 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한 절충안이니, 현 제도에 대한 개선 방향은 완화뿐 아니라 완성으로도 향할 수 있을 텐데, 이 선택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같은 무게를 두고 함께 검토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다른 빈 공간은 책의 의미와 역할이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과 현실에서의 감각 그리고 제도가 멀어져 있기에 매번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마무리되고, 몇 년 후에 현안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상황이 떠오르면 다시 임시방편처럼 제도를 손보게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다. 책이 그저 상품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러한지 또 이로 인한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그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책이 아니라 이를 만드는 출판계에 묻고 출판계가 앞서 답해야 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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