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강의 인사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안녕하세요. ‘대학의 위기’를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된 오찬호 작가입니다. 1~2년에 한 번씩은 서울대에 오는데, 매번 ‘서울대입구역’에서 학교가 엄청 멀다는 걸 잊어서 몹시 허둥거리네요. 버스 타는 줄도 항상 헷갈려요. 게다가 또 잘못 내려, 미로공원 같은 캠퍼스를 헤매면서 강연장소를 찾죠.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서울대가 불편한 건 이것만이 아닙니다. 비슷한 주제로 여러 번 강의를 했더라도, 여기에서라면 준비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죠. 좋은 태도겠지만, 충분히 했는데도 또 합니다. 시급이 낮아지는 비효율적인 상황인 거죠. 저는 <진격의 대학교: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대학의 자화상>을 출간하며 지겹도록 대학의 위기를 다뤘지만, 또 자료를 검토하고 왔어요. 다른 강연보다 확실히 ‘좀 더’요.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여러분 앞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이럴 겁니다. 서울대 타이틀을 지닌 이들을 만나는 누구라도 더 준비할 겁니다. 최적의 예시를 찾아 설명할 것이고 출처 확인도 꼼꼼하게 해 가장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겠죠. 그럼에도, 꾸벅꾸벅 자는 학생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탓할 겁니다. 다른 학교라면 ‘학생들의 수준이 낮은 것’이지만 서울대에서는 반대로 생각하죠. 누군가가 무례한 질문을 던져도 쉽게 발끈하지도 않을 겁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정도로 애써 이해해 버리죠. 정리하면, 여러분은 언제나 더 많은 배려를 받는다는 거죠. 학업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이걸 ‘운’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겠죠. 하지만 ‘보상’이라면서, 열심히 살았기에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개인의 타고난 기질일 리는 없고 주변의 공기가, 우주의 기운이 그러했을 겁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한국에서 서울대라는 위치까지 오기 위해선 그렇게만 생각해야 하는 거죠. 동기부여랍시고 떠도는 말들은 승자독식 합리화나 마찬가지니까요.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경쟁했겠죠.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차단했을 겁니다. 세상 모든 게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느냐 안 주느냐로 단순하게 정리되었겠죠. 그 결과, 서울대에는 삶의 궤적과 철학이 지나치도록 유사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은 학생들의 편견을 결코 고치지 않을 겁니다. 관성을 따지고 비틀고 흔드는 학문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구조조정되었습니다. 있더라도, 융합이나 글로벌 등의 현란한 키워드에 짓눌려 비판학문 본연의 색깔은 무뎌졌죠. 산학협동이라는 말도 이제는 어색하죠. 협동이란 표현이 적용될 정도로 ‘산학’은 평등하지 않아요. 몇 가지 메뉴로만 승부를 거는 음식점처럼 대학도 판매량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하죠. 여기서 아무리 토론을 한들 원래의 생각이 더 굳어질 것입니다.

운이냐, 보상이냐는 건 해석 차이일 뿐이겠지만 어느 쪽이 많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은 극과 극이겠죠. 한쪽은 불평등을 사회적 숙제로 보겠지만 반대쪽에선 경쟁의 결과라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납작하게 정리하겠죠. 특히 엘리트 집단이 ‘보상회로’에 갇힐수록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덩달아 경쟁의 수위도 높아져 괴물은 많아지죠. 물론, 본인은 모르죠. 그러니 제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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