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학습하기

이융희 문화연구자

아이에게 비염 증상이 있어 소아과를 찾았다. 개원 시간보다 40분가량 일찍 왔는데도 환자가 60명 넘게 대기 중이었다. 아데노 바이러스부터 독감까지 각종 기관지 질환이 함께 유행하고 있는 탓이다. 제법 큰 병원인데도 100명이 넘는 환자가 금방 들어찼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진료를 겨우 마치고 나가려는데 접수처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 가족이 자신들의 순서가 왜 이렇게 밀리는지 항의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조금 깊게 들어보니 ‘똑딱’ 애플리케이션(앱)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똑딱은 병원 진료를 보조하는 종합 앱이다. 집 근처의 병원 위치와 각 병원의 대기자 숫자를 확인할 수 있고, 집에서 미리 진료 신청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예방접종 예약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똑딱이 왜 소란의 원인일까? 이유는 병원이 똑딱 앱을 무작정 도입만 했을 뿐, 이 앱을 도입하는 순간 달라지는 질서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각종 암묵적 약속과 규범이 가득하다. 가령 타인의 집 앞에 놓인 택배를 가져가지 않는 것,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놓인 지갑이나 휴대폰은 그 자리에 주인이 있다는 표시라는 것, 버스에 탈 때 줄을 서는 것 등등. 이러한 규범들의 공통점은 공간과 그 공간을 소유한 사람의 몸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똑딱 앱과 같은 예약제 디지털 앱은 이러한 아날로그 질서를 붕괴시킨다.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있어서 직접 병원에 가서 대기하는 사람들이나 앱으로 집에서 클릭 몇 번 한 사람들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불과 며칠 전에 똑딱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병원이 그렇듯, 이 병원은 내원 환자들에게 똑딱의 도입 여부나 사용법, 그로 인해서 바뀔 질서를 공지하지 않았다. 앱이 만든 새 질서는 내원한 고객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이 쌓이고 폭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식될 뿐이다.

사실 한 발자국 들어가 살펴보면 앱 예약과 아날로그 예약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똑딱 앱이 아니더라도 이미 몇주 전 진료를 예약하거나, 전화로 당일 진료를 예약하는 환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발명되고 사회가 수용하면 질서는 바뀐다.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97%(2022년 기준)를 넘어선 지금, 일상의 편의가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 모든 사람이 똑딱 앱을 통해 진료를 예약하면 더 이상 진료를 예약하고 대기하는 것에 공간성이나 신체성 같은 아날로그의 기준이 사라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강신청을 하듯 개원 시간에 맞춰 누가 가장 빠르게 예약하느냐의 경쟁일 뿐.

결국 새로운 질서 도입 과정의 다툼은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하고 정보를 쉽게 습득하며 디지털의 질서에 순응하는 세대와 아날로그적인 질서의 법칙을 오랫동안 규범화한 세대 간 다툼인 셈이다. 사회는 무한히 발전하며 편의를 위한 새 제도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보다 필요한 것은 이런 질서를 잇기 위한 교육과 학습의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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