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효과는, 독서입니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조심스레 독서토론 학원을 준비 중이다. 책을 자주 접하는 내 직업을 활용해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우주의 기운을 느껴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연령을 달리하고 규모를 조정하면서 모의실험 중이다. 유의미한 수익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라 글쓰기를 병행할지, 커피도 팔아야 할지 구체적인 건 아직 없지만, 한쪽 벽면을 어찌할지는 진작 정했다. 거기엔 큼직한 글씨로 학원의 철학이 이렇게 적혀 있을 거다. “독서의 효과는, 독서입니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흐름을 거스르겠다는 당찬 혹은 무모한 포부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 글에서 독서‘법’이란 말이 지나치게 등장하는 시대를 비판했다. 책이 우등생이나 명문대 등의 단어와 결합돼 입시전략 안에서 사용되니 ‘기적의 독서’라는 말이 흔해졌다.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는 이들은 작가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토론의 확장을 유도하는 수준이 아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등 야전교범 수준의 직설적 지시를 내린다. 그래야지만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가 된다는데 그럴 자신, 내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확신, 느껴보지 못했다.

자기계발은 도서 분야 수십 개 중 하나인데, 독서가 그 자체로 언급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새벽에 독서를 한다는 이야기가 잦아지는 만큼 책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거창한 어휘에 갇혀 그 용도로만 활용된다. 그 철장 안에서, 가난한 사람은 독서할 시간이 없다면서 핑계하기 바쁘다는 빈정거림도 자연스러워진다. 애초에 목적이 달랐으니 별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람을 성장과 도태로만 바라보는 자기계발의 속성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거다. 그저 독서의 기쁨을 차분히 전달하면 될 상황에서도 ‘독서 안 하면 나중에 큰일 난다’라는 무서운 말들이 쉽게 등장한다. 젊을 때 운동 안 하면 나이 먹고 티가 나듯이 책 안 읽은 중년들은 깊이가 빈약하다는 독서예찬은, 많이 당혹스럽다.

내게 독서는 완성된 줄 알았던 퍼즐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혼란의 순간이고, 그래서 다행인 경험이다. 책에는 성공과 실패로 간단히 규정될 수 없는 개인들의 수많은 드라마가 있다. 그러니 읽을수록 헷갈리지만, 안심한다. 원래 그런 거라고 여겼던 것들이 깨지면서 여태 몰랐거나 몇 가지 정보만으로 얄팍하게 정의했던 타인의 소우주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부족함을 채우고자 다시 책을 집지만 결과는 ‘책을 읽을수록 확실해졌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다. 이렇게 다수의 독서량이 증가하면, 사회 안에서 차별과 혐오의 수위가 낮아지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거다.

진짜 자존감 높은 사람은, 자존감 뜻도 잘 모른다. 진짜 긍정적인 사람은 ‘나는 긍정적이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감, 긍정 등이 성장의 키워드이자 성공의 징표가 되어 사람을 구별하고 배제하는 곳에선 밑도 끝도 없이 스스로를 자존감 있게 보이려는 집착이 커진다. ‘긍정=자신’으로 포장하려는 강박도 일상이 된다.

독서마저 이 덫에 걸렸다.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뿌듯하다. 현대사회는 그 감정조차 타인과 비교해 수직 구분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그게 본성이 아니라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들은 많다. 독서의 효과가 독서일 때, 타인의 생애를 납작하게 찌그러트리지 않는다. 그럼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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