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불평등만 물려줄 순 없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만 19~34세만 가입할 수 있는 청년도약계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신청 접수 사흘간 신청자가 24만명을 넘어섰다. 해당 연령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0%가량이 가입을 신청한 것으로 추산됐다. 매달 70만원씩 5년간 적금하면 정부 기여금과 비과세 혜택을 더해 최대 5000만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출생연도에 따라 5부제로 신청할 수 있는데, 22일부터 제한이 없어져 가입 신청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투기성 높은 가상자산(코인)에만 열을 올리는 게 아니라 착실하게 자금을 모으겠다는 청년도 적지 않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언젠가부터 한국 청년에게는 ‘부모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꼬리표처럼 붙고 있다. 기성세대는 취업과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육아 등의 과정을 비교적 무난하게 거쳐왔다.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현재 청년들은 희망을 품기 어려운 현실에 처했다. 기성세대가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과정이 청년에게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되고 말았다.

청년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것이라는 전망은 최근 급격하게 벌어진 자산 격차 탓이 크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4.5이다. 집값(7억2250만원)이 연소득(5309만원)의 14.5배라는 뜻이다. 2018년까지 PIR은 8 안팎이었으나 이후 급등했다. 통계는 아파트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상이고, 사회 초년생의 실제 소득은 통계보다 훨씬 적다. 물려받은 게 없는 청년이라면 서울에서 집 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했고, 청년의 희망 사다리마저 걷어찼다. 한 푼 두 푼 모아서는 내집은 고사하고 전셋집도 마련하기 어렵다. 빚까지 내가며 주식이나 가상통화 투자 열풍에 뛰어드는 청년이 부지기수인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정책 금융상품이 나왔으니 인기를 끌 만하다. 꾸준히 납입할 수만 있다면 자산 형성에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청년도약계좌는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청년 공약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미래세대’를 7차례 언급하며 국정의 주안점을 미래세대에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서 급증한 국가채무와 관련해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 ‘약탈’ 등의 단어를 동원하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보호하고 키워야 할 미래세대를 착취와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건 기성세대이다. 그들에게는 노력하면 기회가 주어졌고 열심히 일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고난의 시기가 있었지만, 성장에 편승해 과실을 나눠 먹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불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위 계층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주면 성장이 가속화되므로 모두가 그 혜택을 받게 될 거라는 반론을 펼친다. 이것이 이른바 낙수경제 이론”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성장 과정에서 일부 낙수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맨 앞에서 성장을 이끄는 1%는 성장할수록 더 많은 성장을 요구했다. 1%의 탐욕은 미래에 써야 할 자원마저 고갈시키며 부를 급격히 불리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부자가 되는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를 빼앗아 가지는 것이다. 앞의 방법은 사회의 부를 늘리지만, 뒤의 방법은 대개 사회의 부를 감소시킨다. 부를 빼앗는 과정에서 부가 파괴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의 부를 빼앗는 착취로 낙수효과는 사라졌고, 성장 기반도 무너져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는 한국은 출생률이 가장 낮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이대로 간다면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 파헤쳐진 지구뿐이다. 1%의 탐욕과 거기에 기생한 기성세대가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성장에 매진한 탓이다. 인류의 미래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경고가 나온 지 50년이 넘었다.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에 따른 성장의 한계를 예고했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정부가 청년과 미래세대에 정책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청년도약계좌와 같은 미시적 정책뿐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눈앞이다. 청년에게 암울한 미래를 물려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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