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이 돌아왔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 양생]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는 2021년 휴간한 ‘녹색평론’이 그랬다. 구독자 수의 감소와 재정위기라니, 나도 일조했구나,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받아 쌓아놓기만 했으니까.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서둘러 지나간 잡지들을 읽어보고, 구독을 유지하고, 후원회원이 되어 ‘녹색평론’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것일까? 다행히 ‘녹색평론’은 약속대로 올여름 돌아왔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며칠 전 김종철 선생님의 3주기 추모회가 열렸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행사는 조촐하고 단정했다. 난 풀무학교 학생들의 낭독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글을 고를까 고민했으나 선생님의 그 어떤 이야기든 내면을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라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들은 “마음만으로 되겠냐고 하겠지만, 마음 없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끝나는 글을 읽었다. 나는 ‘녹색평론’의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왠지 슬픔이 차오르는데 비슷한 결일 것이다. ‘네’가 아니라 ‘내’가 저지르고 있는 짓에 대한 물음, 어리석음에 대한 안타까움. 슬픔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2011년 9월, 마을 도서관에서 열린 ‘포스트 후쿠시마’ 강좌였다. 소박한 셔츠 차림으로 나타나서 두 시간 내내 서서 칠판에 수치를 쓰고 지도를 그리면서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강의를 하셨다. 후쿠시마 이후 핵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통절히 반성했고 그때부터 쉬지 않고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독일어를 몰라 핵에 관한 연구가 풍부한 독일어권의 자료를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고민이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강의 끝에 우리 청중에게 “공부해야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 너무 공부를 안 해. 그리고 반드시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해요”라며 일갈하셨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기리면서 진정한 교육자는 너를 해방시키는 자이며 누군가를 들어올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날 김종철 선생님이 그랬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꼿꼿한 자세가, 성실한 태도가, 절실한 마음이 나를 들어올렸다. 하마터면 나는 그날 독일어 학원에 등록할 뻔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어느 날 느닷없이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황망했다. 며칠 후 배달된 ‘녹색평론’ 173권. 선생님은 이미 가고 없는데 뒤늦게 도착한 선생님의 생생한 육성. 코로나19에 관한 12개의 단상 속에는 당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한 글도 있었다. 그날 난 사무치는 마음으로 좀 길게 울었다.

돌아온 ‘녹색평론’ 182호의 주제는 ‘평화’이다. 복간호의 주제로 더없이 적절하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의 이름으로 자연, 제3세계, 여성, 장애인, 기타 약자에 대해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 <수라>가 보여주었듯 우리는 개발의 이름으로 새만금을 막아 그곳의 백합 조개 수천, 수만을 제노사이드하기도 했다. 그것의 결과가 전쟁, 코로나, 기후위기, 혐오 등이다. 희망은 있을까?

1991년 ‘녹색평론’ 창간호의 첫 문장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였다. 그리고 어떤 절박함으로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김종철 선생님은 썼다.

루쉰을 떠올린다. 그 역시 섣부른 희망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절망도 역시 허망하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 한 땀 한 땀 글을 쓰고 번역하고 잡문(雜問)을 쓰면서 시대의 고름을 짜고 또 짜나갔다. 나는 선생님이 그런 심정으로 30년간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김종철 선생님의 딸이자 정치적 동지인 김정현 편집인은 복간호의 권두언을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로 시작한다. 정말 너무 늦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루쉰을 빌려 말하자면 희망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녹색평론’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것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절망에 지지 않는 것,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것, 존엄하게 퇴각하는 것, 마지막까지 서로를 애틋하게 보살피는 것이다. 난 ‘녹색평론’ 구독자이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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