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가 정체성이 될 수 있나?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MBTI 성격 검사가 유행이다. 모두 자신을 네 글자로 설명하는 열풍 속에 이 테스트를 탐탁지 않아 하는 유형조차도 하나의 유형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이런 사람들이 칼럼을 읽다 덮어버릴까 봐 걱정했다. 또 그 타령이야, 하고. 하지만 그들은 ‘비과학적’ 테스트로 인간을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하고 싶은 욕망에 추동돼 읽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실은 내가 이 현상을 나쁘지 않게 보는 이유도 결이 같다. 한국인들에게 인간을 열여섯 가지 다른 부류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성실하고 말 잘 듣고 튀지 않는 유형과 여기서 벗어난 유형.

단일한 ‘한국인 정체성’은 국가 주도로 장려됐다. 예를 들어 재건국민운동은 1960년대 초·중반 이루어진 군사정권의 사업이다. 모든 개인의 생활방식과 정신사상적 측면의 개혁을 도모하며?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통해 ‘더 잘 사는 미래’를 일구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 MBTI 유행 현상엔 상당히 ‘한국적인’ 측면이 있다. 사람을 골라내는 권력이 있는 쪽이 대놓고 ‘거르는’ 기준을 만들기도 한다. 채용 공고에 ○○○○는 지원을 거절합니다, 같은 안내 문구를 적는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장문정 작가는 직장생활 팁을 이렇게 적었다. 상사에게는 절대로 면전에서 싫은 소리를 하지 말 것.

나 같은 경우 MBTI 같은 걸 안 믿는단 유형과 내적 친밀감을 쌓는 편이다. 아마도 이들은 ‘높은 사람’에게 모두 비위를 맞추고 있는 자리에서 ‘진실의 입’을 열어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해내는 것보다 본질을 알아내는 데 골몰하고, 그러다 남들이 바꾸지 않는 뭔가를 바꾸려고 해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특성을 설명하는 말은 질병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출간된 책 제목은 이렇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오월의봄). 정신의학적으로 미쳤다는 것은 질병의 증상이고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게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매드 액티비스트 A 트리에스테는 이렇게 말한다. “광기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지에 대한) 나의 정체성의 한 단면이지, 나와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질환’이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니다.” 책에 따르면 미쳤다는 것은 감각적 인식이 고조되는 상태, 남들이 경험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 것,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을 복합적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잘 보면 사회 변화는 좀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일어난다. 그레타 툰베리는 열다섯 살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고부터 즉시 학교를 빠지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진짜’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툰베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16세 환경 운동가(아스퍼거는 흔히 ‘사회성이 없다’는 평가로 요약되곤 한다).’

7월14일은 국제 매드프라이드의 날이다. 매드프라이드는 “그건 이상한데?”라고 대놓고 말해버리는 사람들의 것이다. 모든 ‘미친’ 사람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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