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리즘’과 특정 세력의 ‘외압’

차준철 논설위원
국민의힘 포털 TF가 지난 4일 ‘포털과 댓글 저널리즘’ 세미나를 개최해 네이버 등 뉴스 포털의 알고리즘 편향성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포털 TF가 지난 4일 ‘포털과 댓글 저널리즘’ 세미나를 개최해 네이버 등 뉴스 포털의 알고리즘 편향성을 비판했다. 연합뉴스

‘속이고리즘’은, 이를테면 선제타였다. 지난 5월9일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다. 네이버에서 윤석열 키워드를 치면 비판과 비난 기사가 일색이라며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속이고리즘”이라고 했다. ‘갈고리즘’은, 공세를 높인 그의 후속타다. 이달 초 방송통신위원회가 포털 긴급 실태점검에 나선다고 하자 “알고리즘이 ‘악마의 도구화’하고 있다”며 “갈등으로 끌어당기는 갈고리즘”이라 했다. 이어 “특정 세력의 외압이 있었는지, 조작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진상을 가려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수사당국이 수사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말은 곧 화자의 생각과 가치, 신념이 담긴 것이니 알고리즘에 대한 여당 고위 인사의 판단은 명확히 보인다. 속이는 것,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것, 그래서 엄한 수사로 예외 없이 단죄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속이고리즘, 갈고리즘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재미로 구사한 언어유희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가 이런 유의 말바꾸기에 계속 나서 급기야 “시럽급여”를 운운한 일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품격은 찾아볼 수 없고 협의와 소통에도 등을 돌리는 거칠고 일방적인 말들이다.

권력 있는 사람이나 집단의 말은 명령으로 통한다. 속이고리즘과 갈고리즘이란 말이 나온 사이에 벌어진 일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여당은 정부가 포털의 뉴스편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고, 연일 포털업계를 향한 날선 목소리를 이어갔다. 국회 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네이버가 알고리즘을 ‘엉터리’로 학습시켰다고 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뉴스 포털의 편파성·불공정성에 대한 여론의 비판에 주목한다며 다각도로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전례 없던 포털 실태점검에 착수하며 “위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앞질러 나갔다. 정부와 여당이 합심해 포털 압박 수위를 높여간 것이다.

결국 포털 뉴스의 편향성에 관한 시비인데, 이는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여당 시절 포털의 보수 편향을 비판하며 규제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면 지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한편에서 속이고리즘, 갈고리즘으로 간주된 알고리즘을 제대로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알고리즘이란 입력된 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대답이나 해결책을 얻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해당 음료수가 나오는 자동판매기를 떠올리면 쉽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개입하는 알고리즘이라면 오류가 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을 설계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된 정보나 작동 명령을 입력하는 실수 혹은 고의를 범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그 고의성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론 등 사회에 영향이 큰 부문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투명성과 납득 가능성을 요구하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 정부·여당의 방식은 입맛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유만 앞세워 포털을 해악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겠다는 식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은 팩트로 여겨지지 않으므로 편향을 유발한 누군가의 고의를 입증하는 게 먼저인데, 이는 강제수사로 될 일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포털 알고리즘의 입력값인 뉴스 빅데이터는 ‘다양성’이 특징이다. 공평성 잣대를 하나만 선택해 알고리즘에 적용한다면 다른 잣대를 가진 쪽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집단을 모든 면에서 공평하게 대우하는 해법은 없다는 것이다.

포털 알고리즘을 적대시하는 최근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정부·여당 비판 보도를 무조건 ‘가짜뉴스’로 취급하며 감사·수사를 동원해 언론 장악에 발벗고 나서온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에다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까지 걷어내겠다는 심산이다. 가짜뉴스 타령과 공영방송, 비판 언론 탓에다 포털 탓을 얹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포털 뉴스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버젓이 말한다.

미국과 유럽은 알고리즘에 신중히 접근한다. 인종·젠더 차별 금지와 인권·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전문가들이 감시·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포털에 관여할 대목도 이런 부분이어야 한다. 권력의 힘으로 포털을 쥐고 흔들어 친정부 뉴스 일색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여당의 의중이 다름 아닌 ‘특정 세력의 외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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