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연구자’ 신승철·정태인을 기리며

한윤정 전환연구자

많은 죽음이 이어지는 혹독한 여름이다. 산사태에 묻히고 거센 물살에 스러진 분들, 수색 작업 중 젊디젊은 나이에 생을 다한 애달픈 해병대원의 영전에 꽃을 바친다.

그들과는 다른 두 사람의 삶과 죽음, 그들이 남긴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 사람은 생태철학자 신승철(1971~2023)이다. 평온하던 일요일(7월2일) 오후, 그의 이름으로 온 문자메시지에 본인 부고가 떴다. 폐동맥혈전색전증으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와는 몇 차례 통화하고 화상회의와 거리에서 마주친 인연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원고지 25장의 글을 청탁했는데 A4용지 25장을 써놓고 너털웃음을 짓던 일, 첫 통화에서도 오랜 지인처럼 편안했던 어조가 기억에 남아 못내 가슴이 아팠다.

역시 그는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가까운 이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는다. “같이 공부하자고 이끌고 글 쓸 기회도 주셨던 스승” “한 명 한 명 이끌듯 손잡아주던 안내자” “북극성” “등대”….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공통적으로 정말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회고한다. 학생, 활동가, 연구자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연락해 생각을 나누고 참여의 기회를 주었던 탁월한 ‘연결자’였다.

신승철은 학위 논문을 쓰면서 마련한 개인연구실에 ‘철학공방 별난’이란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과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이를 생태적지혜연구소,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켰다. 같은 이름의 웹진도 있다. “그와 만나 그의 전화를 받던 사람들이 연구소를 함께 운영한다. ‘생태적지혜’라는 말은 전통지식의 의미를 넘어 각자 가진 지식을 나눈다는 뜻이 있다”(박숙현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장)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겪은 광주항쟁, 끝까지 도청에 남아 목숨을 바쳤던 학생과 시민군의 자치적 코뮌(공동체)에 깊은 인상을 받아 학생운동, 노동자·도시빈민과의 연대활동에 앞장섰다. 학문적으론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들뢰즈·가타리, 스피노자, 머레이 북친, 브뤼노 라투르 등을 공부하면서 건강한 욕망의 발산에 기초한 생태사회 건설을 모색해왔다. 40여권의 책을 낸 열정적 저자로서 최근엔 기후위기와 탈성장 전환 연구에 집중했다. 짧은 생이었지만 가난하고 즐거운 공동체를 꾸린 그는 오래된 미래를 미리 살았던 사람이다.

이즈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독립연구자는 경제학자 정태인(1960~2022)이다. 지난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정태인 선생의 1주기(10월21일)에 맞춰 뜻깊은 추모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자신을 독립연구자로 규정했던 그의 뜻을 기려, 친구와 동료들은 젊은 독립연구자들을 초대해 그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하고 발표를 돕는 방식으로 행사를 연다. 개인을 넘어 독립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정태인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발탁되어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2년 동안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면서 결별한 이후,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당시 자신의 반대 논리가 부족했다고 반성하면서 경제학 공부에 더욱 매진한 그는 2007년 대선 당시 심상정 민주노동당 후보의 경제공약인 ‘3박자 경제론’을 입안했으며 심상정·노회찬 의원과 함께 정의당을 창당했다. 뒤늦게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정의당의 그린뉴딜 정책을 만들었다.

오랜 친구이자 추모 모임을 주도하는 정건화 한신대 교수는 “사회적 경제, 생태경제, 통일경제는 그의 세 가지 학문적 관심사였다. 현실과 정책이 이론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정책가이면서도 새로운 경제이론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놓지 않았던 끈질긴 연구자였다”고 회고했다. 짧은 공직생활을 제외하고는 평생 집에 월급을 갖다준 적이 없을 만큼 지위와 보상을 넘어 공적 가치에 헌신한 삶이었다.

두 사람뿐일까. 우리 사회의 독립연구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통해 교수가 되지 못한 연구자들의 처우를 개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학 울타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가치를 중심으로 소수자, 비인간존재, 물질, 지구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연구활동가’ 집단이 엄연히 존재한다. 갈수록 쪼개지고 계량화되고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의 바깥에서 삶(생명)의 문제와 분투하며 작은 등불을 밝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떻게 감사를 표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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