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의 매력과 역설

김태권 만화가
[창작의 미래] 인생 이야기의 매력과 역설

“내 이야기 들어 볼래?” 모두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남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 없는, 자기 이야기의 역설이랄까. 그래도 인생 이야기는 매력적인 장르다. 자서전, 인생록, 회고록, 논픽션, 무어라 부르건 말이다. 그리고 잘 만든 인생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의 이야기가 된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 올해 7월에 우리말로 번역된 그래픽노블이다. 지은이 마고 투르카는 프랑스의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다. 제목 그대로, 삼십대에 뇌졸중에 걸렸다. 그 뒤 치료받고 재활하는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고 재치있게 그려냈다.

올 1월에는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가 번역됐다. 두꺼운 만화책 네 권이다.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쇼와 시대를 만화로 담았다. 얼핏 딱딱한 내용 같지만 이 책도 자기 이야기다. “난 군국주의가 아주 싫었다. ‘국가’만 있고 ‘나’는 없었다.” 미즈키 시게루는 요괴 만화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다. “나는 특히나 자유를 속박당하는 걸 어릴 때부터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기묘한 분노가 남보다 훨씬 컸다.”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일본의 현대사를 훑었고, 역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기 인생을 만화로 그렸다.

이 분야의 고전으로 아트 슈피겔만이 그린 <쥐>가 있다. 자기와 아버지의 아옹다옹하는 관계를 만화로 그렸는데, 아버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 수용소에 갇혀 있던 생존자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냈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사춘기 때 자기와 자기 집안 이야기인데, 또 읽다 보면 이란 좌파가 본 이란 혁명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또 어떻게 하면, 자기 이야기를 남이 읽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자기 이야기의 매력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믿음을 준다는 점이다. “내용을 가짜로 지어내면 독자와의 약속이 깨진다.” 회상록의 대가 메리 카가 6월에 우리말로 번역된 책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독자가 작가의 내면에 동질감을 많이 느낄수록 독자와 작가 사이의 유대감은 깊어진다”고 말했다. 또 “‘교감’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이라고 했다. <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다.

교감은 개인의 영역을 넘기도 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면 간단하게 묘사해보세요…. 개인적 이야기를 집단적 시대상과 함께 기록하면 독자들은 당신의 글을 한층 신뢰하고,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공감도 얻을 수 있어요.” 올 4월에 나온 책 <이츠 마이 라이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쥐>와 <페르세폴리스>와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는 사실을 말한다는 믿음을 준다. 그리고 이것이 언젠가 내가 그리고 싶은, 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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