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문제의 근원은 ‘한탕개발주의’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새만금 잼버리 현장. 잼버리 참가 벨기에 팀 인스타그램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새만금 잼버리 현장. 잼버리 참가 벨기에 팀 인스타그램

“이게 나라냐?” 7년 전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해 거리를 메웠던 촛불시민들의 함성이다. 세계잼버리 대회를 보면서 분노의 이 질문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회와 관련, 윤석열 정부로부터 이전부터 준비해온 전라북도 등 정부의 잘못은 끝도 없다. 잼버리대회가 국제적 망신이 되고 만 것이 누구 책임인가에 대해 여야간 공방이 한참이다. 파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넘어 이번 대회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한탕개발주의’다.

3년 전, 나는 현대사 기행을 하며 새만금에 들렀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세계잼버리대회 광고판이었다. 조금 들어가자 새만금 ‘마지막 갯벌’인 해창갯벌을 메우고 있는 불도저들, 그 앞에 ‘바다를 기다리는 새만큼 갯벌’ 등 환경단체들이 세워놓은 매립 반대 펼침막과 장승들이 나타났다. 환경단체들은 후세에게 물려줘야 할 고귀한 자연유산인 갯벌을 매립해 잼버리대회를 여는 것은 ‘청소년들이 자연과 교류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잼버리정신에 어긋난다고 시위를 했고 항의서한을 세계잼버리연맹에 보냈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갯벌까지 메우기 위한 환경파괴적 한탕개발주의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한 대회는 애당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장소들을 놔두고 폭염의 여름에 나무 한그루 심을 수 없는 매립지에 수 만 명의 청소년들을 야영시킨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긴 말이 필요 없이, 언론이 보도한 2017년 전라북도 도의회 회의가 이번 대회의 민낯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도영 도의원이 도 관계자에게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하는 가장 큰 목적이 뭐냐”고 묻자 도관계자가 “새만금을 속도감 있게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철도, 공항 등 인프라를 좀 더 빨리 하기 위해 예산을 빼오기 위한 명분으로 잼버리를 유치한 것 아니겠냐. 굉장히 잘했다고 본다.”고 맞장구를 쳤다. 김대중 도의원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이번 대회는 지역 개발주의자들이 새만금갯벌을 속도감 있게 개발, 아니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자 인프라를 빨리 짓기 위해 예산을 빼오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탕개발주의에 의한 잘못된 부지선정이 4만3000명 세계청소년들의 꿈과 추억을 짓밟고, 한국과 전라북도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라는 지역 시민단체는 전북정치권이 빨라야 4년 뒤인 2028년에나 완공될 공항건설이 이번 잼버리대회에 필요하다며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요구했었고 현 군산공항보다 활주로가 짧고 한 개밖에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잼버리가 실패하고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공항 건설업체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개발에 대한 전북의 열망을 이해한다. 새만금사업의 원래 목적은 농지확대를 통한 식량증산이었다. 쌀이 남아돌면서 이 목표는 사라졌다. 따라서 구태여 중요한 인류의 자연자산이자 관광자원인 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고 국제대회를 유치할 필요는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주장했듯이, 갯벌의 가치가 개발 가치보다 크기 때문에 매립이 아니라 갯벌복원이 세계적 추세이다. 공장과 국제대회는 인근의 적합한 지역에 유치하고 정부가 새만금 대신 이를 지원해주면, 갯벌도 살리고 지역발전도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번 대회는 잘못된 한탕개발주의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파괴한 갯벌을 원상복구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남아있는 자연을 보존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수요도 적은 신공항 건설 같은 잘못된 사업은 재고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이번 사태를 전라북도의 지역이기주의의 결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한탕개발주의는 새만금과 전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남을 포함한 전국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뻔뻔한 비판이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국제용역연구와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엑스포 유치를 내세워 막대한 국가예산을 배정받아 밀어붙이고 있는 부산 가덕도신공항도 한탕개발주의의 대표적 예로, 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새만금에 해수를 유통시켜 썩어가는 수질을 개선해야 한다. 잼버리 부지 앞 펼침막은 새만금이, 나아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에스겔서 47장8절).” 자연을 거슬리는 개발지상주의는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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