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사람을 갈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먹이 사람을 갈다

송대 초엽 문인 사이에서는 ‘벽(癖)’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풍조가 크게 일었다. 벽은 기호나 취미, 버릇 등에 ‘병적’으로 집착함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수집벽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만연했다.

지성이 남달랐던 소동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먹과 벼루 수집벽을 지녔던 그는 좋은 먹을 70개나 가졌음에도 또 가지려 한다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했다. 하지만 남이 지닌 좋은 먹이나 벼루를 보고는 억지로 빼앗기도 하고 슬쩍 집어 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벗이 한 방 가득히 먹을 매달아 놓은 것을 보고는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간다”며 통탄하기도 했다.

자신도 헤어나지 못했던 벽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본말이 전도된 행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음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본말이 전도된 행태가 오히려 일상적이었던 듯싶다. 역사책에는 먹이 사람을 갈아대는 것과 같은 세상에 대한 한탄이나 절망의 목소리가 수두룩하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말을 둘러싼 본말 전도는 그 비근한 예다. 이를테면 ‘가짜뉴스’ 같은 병폐 말이다.

말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회를 위해 존재함에도 언제부터인가 사람과 사회가 말에 의해 갈리는 시절이 지속되고 있다. 아니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말로 인해 사람과 사회가 이로워지는 게 아니라 말로 인해 사람과 사회가 피폐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인과 언론인, 판사, 검사, 교수 같은 이들이 끼친 해악이 자못 크다. 주지하듯이 그들은 말을 사람과 사회를 위해 선하게 써야 한다는 큰 책임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그러한 이들이 오히려 앞장서 가짜뉴스 같은 삿된 말로 사람과 사회를 갈아대고 있다.

<춘추좌전>에는 이러한 말이 나온다. 정나라 장공에게 공숙단이 아뢴 말이다. “물고기와 짐승은 어부와 사냥꾼의 의도 때문에 미끼를 물고 함정에 빠진 것임에도, 사람들은 물고기와 짐승에게 그렇게 된 책임을 묻고 어부와 사냥꾼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 이에 가짜뉴스를 대입하면, 가짜뉴스 제조자와 유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가짜뉴스에 당한 이들을 우매하다며 손가락질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말을 악하게 써먹는 자들이 득세하고 큰소리 내며 활개 치는 시절이 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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