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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가 되새길, ‘백 투 더 퓨처’의 교훈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수십년간 장르·형식 뛰어넘으며
아직도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영미권 문화산업 위력이 부럽다

K컬처 부가가치 극대화 무관심한
우리 문화계와 정치권이 아쉽다

뮤지컬 <백 투 더 퓨처>가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캣츠> <맘마 미아!>가 상연됐던 윈터가든 극장에서다. 이미 내년 2월 공연까지 예매가 진행됐다. 당장은 표를 사기 힘든 흥행이 전망된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이미 영국에서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리버풀 초연에 이어 2021년 런던의 아델피 극장에서 시작된 공연은 이듬해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작 뮤지컬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1층 대부분 좌석을 최고가로 설정하는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가와는 달리 철저히 보이는 각도와 음향의 수준에 따라 1층인 스톨에서부터 3층인 어퍼 서클까지 11개의 차등을 둔 티켓을 파는 주도면밀함이 더해졌다. 무대 전면이 모두 잘 보이는 1층과 2층의 최상급 자리는 입장권 한 장에 175파운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3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백 투 더 퓨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백 투 더 퓨처>.

인기의 비결은 세대를 초월하는 ‘보고 즐기는’ 재미다. 우선, 영화를 추억하는 연령층에게는 뮤지컬 속 이야기는 물론 공연장 자체가 이미 복고와 향수 가득한 시각적 이미지를 선사한다. 객석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간여행이 펼쳐지는 셈이다. 예전 PC통신에서나 봄직한 네온사인풍의 직선들로 꾸며진 무대 장식이 게임기기들로 가득한 오락실 풍경을 방불케 하고, 1980년대로 시작해 1950년대로까지 돌아가는 추억의 소품들은 미소와 함께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시종일관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노래들인 척 베리의 ‘자니 비 굿’이나 휴이 루이스 앤드 더 뉴스의 ‘파워 오브 러브’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라이브로 재연되면 환호가 터져나온다. 심지어 뮤지컬의 홈페이지 디자인도 예스러운 활자 위주의 복고풍 이미지 그 모습 그대로다. 시간을 뛰어넘는 반가움이 느껴진다.

요즘 세대들까지 환호하는 부분도 있다. 타임머신을 활용한 시간여행의 묘미,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스토리의 변치 않은 매력이다. 지금은 단종된 은색 스포츠카 들로리안도 한몫한다. 갈매기 날개처럼 위로 열리는 자동차 문은 요즘 시선으로 봐도 여전히 근사하다. 항간에는 자신들의 모델을 사용하면 제작비 전부를 투자하겠다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의 제안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백 투 더 퓨처>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떠올라 객석 위로 날아오는 들로리안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이 뮤지컬의 명장면이 됐다.

무엇보다 압권은 미래로의 회귀다. 주먹 불끈 쥐게 만들던 박진감 넘치고 스피디한 전개, 스티븐 스필버그 특유의 ‘엎친 데 덮치는’ 설상가상의 상황들이 무대에서도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요즘 무대에서 흔히 시도되는 영상과 무대의 결합과 상호보완적인 특수효과가 이 작품에서도 탄성을 자아낸다. 영화를 무대적 양식에 담아 재연하는 기법만으론 과거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선보였던 대작 뮤지컬 <선셋대로>보다 한 수 위로 느껴질 정도다(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런던의 같은 공연장에서 올려져 더 잘 비교된다). 영화의 제작진이었던 극작가 밥 도일, 프로듀서 겸 연출가 로버트 저메키스,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와 글렌 발라드 등이 뮤지컬에서도 함께 작업한 덕분에 얻어낸 성과다.

개막 첫 주,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의 경이로움에 비해 무대가 보여주는 파격이나 실험정신은 찾기 힘들다는 불평이다. 그래도 칭찬일색인 것은 들로리안이다. <오페라의 유령>에 샹들리에가 있다면, <백 투 더 퓨처>에는 들로리안이 있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반면, 인터넷 사이트들의 관객 평점은 열에 아홉 이상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이 투덜대도 흥행에는 아무 걱정 없다는 뜻이다.

제일 부러운 것은 수십 년간 장르와 형식을 뛰어넘으며 아직도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영미권 문화산업의 위력이다. 원작의 주인공 마이클 J 폭스나 괴짜 과학자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이제 피부에 주름 가득한 노신사가 됐지만,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는 콘텐츠의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K드라마가 인기를 누리고 K팝이 세계를 석권하는 요즘이지만, 문화산업의 부가가치 극대화에 대한 정책적 배려나 환경 조성에 무관심한 우리 문화계와 정치권의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백 투 더 퓨처>의 교훈을 되새길 줄 아는 혜안의 부재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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