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싫어하는 대통령님께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금, 자유전체주의를 맹종하며 공동체를 교란하는 반인권세력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차별할 자유도 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를 한 아파트에서 임대아파트와 같은 학군 배정을 반대하는 게시물을 올린 사례로 언급한 후 어떤 항의를 받았을까요? “내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게 왜 차별이냐! 내 자유지.”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금, 자유전체주의를 추종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반민주주의 담론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보편적 인권을 누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군부독재 시절 빈번했던 인권유린의 실상을 짚을 수밖에 없죠. 어떤 e메일을 받았을까요? “왜 전직 대통령을 나쁘게 묘사하냐! 빨갱이 잡은 게 인권탄압이냐! 당신의 사상이 수상하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사상검열이 늘어난 듯한 느낌, 기우겠죠? 사실을 제대로 말하고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글 쓸 자유가 상당히 위축된 기분입니다. 과민반응이 아니라 지난 시절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의 희생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용공조작은 위장, 잠입, 교란이란 단어를 나열한 후 ‘저 인간은 공산주의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짐승 취급한 사건인데 한국 현대사의 핵심이죠. 제주4·3 사건이 ‘학살’인 건, 숨어 있는 공산전체주의 세력 찾겠다고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수십년이 지나서도 같은 이유로 광주가 피바다로 물들었죠.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자유전체주의 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사회는 ‘좋은’ 체계는 유지(보수)하고 ‘나쁜’ 관성은 방향을 틀어야지만(진보) 좋아지는데, 요즘에는 조금이라도 진보 냄새가 나면 내용 불문 정치적이라면서 비난을 받습니다. 사회를 비판했을 뿐인데, 사회를 분열시킨다며 욕을 먹고 특정 정당에 유리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칼 앞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진보가 좌익, 용공세력, 친북·종북좌파로 오랫동안 불렸지만 2023년에도 그런 오해를 받는다는 게 과연 상식적일까요?

존경하는 대통령님. 자유주의 전파자로 위장한 전체주의 세력을 꼭 발본색원해 주세요. 이들은 민주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권의 범위를 축소하고, 권력에 저항하며 만들어간 민주주의의 맥락을 왜곡하고, 일상 속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찾자는 진보적 가치를 이념의 굴레로 재단합니다. 우리가 절대 속거나 굴복하지 않게 해 주세요. 자유전체주의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믿음과 확신을 주세요.

인권·진보·민주주의는 언제나 ‘색깔론’의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달라진 건, 어느 순간 더 가혹해졌다는 것이죠. 공격하는 쪽은 갑자기 믿는 구석이 생긴 건지 더 확신에 차서 더 강하게 난도질을 합니다. 조롱과 빈정거림의 수위도 끔찍할 정도로 높아졌죠. 그 신호탄,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님의 광복절 경축사 외에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요. 설마 이런 칼럼 하나에 기분 나쁘신 건 아니시죠? 공산전체주의를 싫어하시니까,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를 분명 존중해 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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