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까지 ‘문재인 정권 심판’으로 치를 텐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으로까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반공 드라이브’를 보며 궁금해졌다. 진심인가 전략인가? 통치자의 행위는 보통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게 그럴듯하면 진심인지 아닌지를 더 따질 필요는 없다. 저게 정말 진심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건 그만큼 전략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란 뜻인데, 지금 이 논란이 딱 그렇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보통은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고 하지만 이걸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선 국민 대다수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독립운동에 공이 큰 분으로 알고 있다. 새롭게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외교안보적 이해가 걸려 있는 것도 아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홍범도 장군 흉상을 보면서 소련 공산당을 연상할 리도 만무하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밑도 끝도 없는 이념 시비는 짜증만 유발한다. 누가 무슨 이유로 결집을 하겠나?

결국 뭔가 진심이 아닐까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최근 윤 대통령은 자꾸 ‘반국가세력’을 호명하며 싸우자고 한다. ‘새는 좌우의 양날개로 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구에 대해서도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고 하면 새는 날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했다. 국가를 지키자면서 날개가 어느 한 방향으로 향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국가주의·전체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으로, 자유민주적 가치관과 충돌한다. 여기서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는 가치의 실현이 아닌, 이 편 저 편을 가르는 기준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가짜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구현을 하겠다는 취지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국가기관의 국가주의적 횡포였던 국정원 댓글 사건을 소신을 갖고 수사하던 윤석열 검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변한 계기가 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힌트는 이번에도 본인의 발언에 있다. 지난달 29일 비공개 국무회의 발언을 다룬 보도를 보면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왜 예산을 들여 거기(육사)에다가 (흉상을) 설치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 걸로 돼 있다. 전 정권이 공산전체주의 등에 입각한 특정한 의도를 갖고 한 일이라는 투다. 전 정권이 손을 대지 않은 국방부 앞 흉상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과 반공 드라이브는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빼고 다)’의 연장선인 거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소명을 ‘전 정권에서 비롯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여긴다. 전 정권이 한 일을 뒤집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임 정부와 철학적으로 확실히 구별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정론이지만,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의 정치 초보라 그럴 준비는 돼 있지 않다. 뭘 하겠다는 것보다 뭔가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게 더 쉽고 편하다. 그렇다고 집권한 지 1년 넘게 ‘전 정권 탓’만을 반복하는 건 민망하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전 정권이 한 모든 일들이 공산전체주의의 음모일 수 있다는 서사는 그럴듯한 해법일 것이다. 마치 운동권 1년 차가 세상만사를 계급모순 또는 민족모순으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쯤에서 초점을 다시 전략의 차원으로 옮겨보자. 꼭 윤 대통령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이 전 정부가 한 일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집권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도 그런 전략으로 대선에서 이겼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반공 드라이브’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총선까지 ‘문재인 정권 심판’으로 치를 수는 없다. 대선 전략에 색깔론을 강화하는 식이라면 그건 폐기돼야 한다.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반대한다’에 불과한 ‘바로잡겠다’는 캠페인이 한국 정치를 더 나쁜 걸로 만들어왔다는 점을 성찰할 필요도 있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좋은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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