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위험사회 재해석의 착각과 위험성

미래의 불확실성은 과거로부터 찾아야 한다. 지난 몇년 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문제는 사회·경제만이 아니라 삶의 양식 전반을 변화시켰다. 게다가 인구구조 변화부터 플랫폼 경제, 디지털 기술과 접목된 챗GPT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직면했던 이민과 이주노동을 둘러싼 갈등도 현실화할 것 같다. 재앙이나 사건·사고를 접하는 시각이나 해법은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적이다. 특히 지난 1년6개월 보수정부 시기의 모습은 더 그렇다. 윤석열 정부는 ‘약자복지’를,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동행’을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대처 방향으로 강조한다. 보수의 가치 프레임이 새롭게 변화했다. 선별적 복지나 능력주의와 다른 새로운 대중언어로의 탈바꿈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일부 논자들은 “우리 사회의 위험을 새롭게 정의하고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한 대응방안”을 언급한다. 이들은 빈곤, 실업, 노령, 질병, 장애, 사망, 폭력 등을 전통적 위험으로 치부한다. 대신 과다 채무, 고립·단절, 정신·자살, 출산·양육, 주거불안, 불안정 고용, 재난·안전 등을 새로운 위험으로 찾았다. 새로운 위험은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기에 개념은 물론 대상과 정책도 새롭게 찾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험 대응은 기존의 접근 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과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기에 다차원적 위험성과 통합적·개인 맞춤형 접근과 지원을 밝힌다. 그런데 정작 전통적 위험이 낡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빈곤과 실업, 질병과 장애 등은 오히려 더 가속화되고 있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지난 수십년 동안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은 규제로 격하한다. 또한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 성찰이 필요함에도 이해 당사자들과의 소통은 찾아볼 수도 없다. 오히려 기존의 거버넌스조차 파편화시켰다. 개념의 재검토가 아니라 무개념과 몰이해로 봐야 한다. 주요 국정과제와 예산을 꼼꼼히 살펴보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구조적 차별은 구시대적 유물로 취급한다.

명시적으로 기존의 약자 지원을 끊거나 사각지대 문제를 도외시하지는 않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2.5%)이나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2389억원)은 물론 장애인 저상버스 도입(220억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보편적 복지 대신 가장 취약한 계층을 두껍게 보호한다는 ‘두꺼운 복지’의 허상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30여년 전 새로운 사회현상을 조명한 한 권의 책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배울 점이 많다. 벡은 과거의 자연재해나 지나친 과학이나 기술의 위험을 지적했다. 나아가 그로 인한 불안 증대로의 사회현상을 전망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았다. 국가와 사회가 생산과 이윤 중심의 논리에만 맡겨두었을까. 오히려 사회·경제 시스템과 삶의 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적절한 개입과 규제가 있었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보면 국가와 사회는 무한경쟁의 시장 자율에만 맡겨 놓지 않았다. 지나친 과학·기술발전의 폐해는 물론 급속한 산업구조 개편 과정이 초래한 문제점에 개입하고 통제했다.

무릇 국가는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된 취약계층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성찰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제기된 아프면 쉴 권리나 전 국민고용보험, 보건의료·돌봄 등 필수노동자 문제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진척된 것이 없다. 특히 바이러스나 기후위기에 차별이 아닌 평등한 정책은 더 필요하다. 이제라도 ‘허용할 수 없는 위험’과 ‘허용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과거의 위험을 터부시하고 새로운 위험만을 찾는 것은 큰 사회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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