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안, 유감이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교육특위 위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교육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연말까지 확정을 짓는다는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공론화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내신 체제의 변화로 대학별 고사의 확대 가능성이 커졌고, 고교학점제의 전제조건인 내신 절대평가를 무력화시킨 교육부 개편안은 챗GPT가 내놓은 안보다 허술하다.

첫째, 수능 대상 과목이 협소해 파행적인 학사 운영을 가져올 수 있다. 고등학교 과목은 공통,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으로 구분되는데, 대개 1학년에 공통, 2학년에 일반선택 과목을 편성한다. 수능 과목은 국어·영어·수학이 2학년 일반선택, 사회·과학이 1학년 공통과목이다. 수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고교수업에서 3년 내내 수능 과목을 반복하는 ‘이중시간표’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둘째, 문·이과 구분을 벗어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고등학교는 흥미와 적성이 분화되는 시기인데 수능에서 사회·과학을 필수화하고, 국어·영어·수학까지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셋째, 개편안이 도출된 절차적 문제이다. 수능은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과 맥을 같이해야 하고, 변별력이 높아야 하며,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면서 사교육의 성행을 가져와서는 안 되는, 모순적인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개편안은 어떻게 나오더라도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필요한 게 사회적 합의다. 이를 위해 출범한 기구가 ‘국가교육위원회’이지만, 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뉴라이트 인사가 장악하며 거수기 역할을 할 뿐 현재까지 존재감이 없다.

교육부가 ‘밀실’에서 만든 단일안에 대해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한다는데, 공론화의 본질을 살리려면 복수의 안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국가교육회의’가 숙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2018년 수시와 정시 비율에 대해 공론화를 했는데,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백가쟁명식 논쟁 속에 열린 소통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차제에 더욱 전향적인 수능 개선 방향도 모색해야 한다. 주어진 선택지에서 정답을 콕 집어내는 5지선다형은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어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창의력·문제 해결력·의사소통·비판적 사고력 등의 고등사고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논술형·서술형 시험이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표준화된 대입시험을 운영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영국의 에이레벨 등 논·서술형이 대세다. 우리와 같이 치열한 대입 경쟁으로 객관화된 채점이 필요한 중국도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 논·서술형을 포함하고 있다.

수능에 통합교과적인 논·서술형을 일부 도입하되, ‘P/F(Pass/Fail)’로 기본만 갖추면 패스시켜 통과율을 80% 이상이 되도록 하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교육이 강조되면서도 사교육 유발 가능성은 낮다. 채점의 공정성 문제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채점을 활용할 수 있다.

수능은 초·중·고 교육이란 오케스트라의 지휘봉 역할을 한다.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수능 개편안에 대해 교육주체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해 시끌벅적한 토론을 벌이고,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확보하기 바란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교육특위 위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교육특위 위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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