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일부러 집값 올리는 정치

김민하 정치평론가

후보 시절에 윤석열 대통령이 외쳤다. “민주당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무능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거다!” “국민들이 자기 집을 갖게 되면 보수화된다고 본 것 아닌가!” 여당의 김포 서울 편입론에 이어 금융당국이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를 내놓는 걸 보며 이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 윤 후보가 근거로 든 건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책의 한 대목이다. 거기서 논하는 바는 자산 소유에 따른 정치 성향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 정책은 경제 정책의 범주를 넘어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걸 ‘일부러 집값 올린 근거’라는 건 극단적 유튜브 세계에서나 통하는 논리다.

집값을 올린 죄로 정권을 상실했으니 ‘민주당이 재집권을 위해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는 주장은 검증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다시 꺼낸 건 그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관을 재론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서 여당의 김포 서울 편입론을 두고 “허를 찔렀다”고 하던데, 자기들끼리는 나름 묘수를 꺼내든 분위기였던 거 같다. 그러나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듣자마자 코웃음부터 쳤을 것이다. 서울시 김포구? 뜬금없이 왜? 이런 생각부터 든다면 이건 이미 끝난 것이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좀 그랬는지 ‘서울시 김포구’는 이제 ‘메가 서울’로 덩치를 크게 키운 상태다.

아무튼, 효과를 떠나 애초에 그 ‘왜’의 진정한 답은 뭔가? 여당 관계자가 언론에 이미 다 풀어놨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 베드타운에 집을 소유한 유권자들의 집값 상승 욕구를 건드려 제2의 뉴타운 선거를 치러보겠다는 거라는데, 대통령의 후보 시절 말을 빌리자면 ‘일부러 집값을 올리겠다’는 것 아닌가? 얼마 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또 전 정부 탓을 하며 “‘영끌 대출’이라든지 ‘영끌 투자’ 행태는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다들 형편이 되는 대로 ‘영끌 대출’ 받아 김포 하남 구리 부천 등에 부동산 투자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갑자기 나온 공매도 전면금지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실시됐던 3차례의 공매도 금지 조치는 글로벌 금융 위기나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영향 같은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지 않은 데다 금융당국은 오히려 전면 허용을 고려하던 차였다. 결국은 총선 앞두고 주가 부양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게 거의 모든 언론의 평이다.

종합하면, 최근의 연이은 정책 ‘포커싱’은 투자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 여당을 지지하면 자산 가치를 불려주겠다는 신호를 주는 게 핵심인데, 이게 ‘막걸리 선거’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막걸리 선거’ 아닌 게 어디 있나”라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정치란 이해관계의 조정이며 선거란 약속을 내걸고 표를 보장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령 “경제 성장으로 코스피 3000시대를 다시 열겠다” “수도권을 단일경제권으로 묶겠다”고 하는 게 지금 정권이 하는 일과 같을까? 이해가 안 된다면 이런 건 어떨까? 애초 김포 시민들의 요구는 교통 문제 해소였는데, 이제 이건 뒷전이 될 위기 아닌가? 공매도 역시 그렇다. 과거에도 정부는 전면금지 기간 동안 제도를 손질해 폐해를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재개하면 제자리이고 개미들은 또다시 ‘공매도 세력’ 음모론을 얘기해야 했다. 이번이라고 다르겠나?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없으면서 선거 때 유권자 현혹용 반짝 구호만 내미는 정치는 유권자를 무시하고 한참 아래로 보는 정치관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수다. 대통령이 어퍼컷을 날리며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고 할 때부터 이미 다 확인된바, 속을 걸 알면서도 속는 것 같아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 다들 그럴 테니, 이런 정치는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어떤가 감히 간언해보는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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