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이야기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 두 나라 이야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전쟁의 참상에 관한 보도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연일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의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10월27일에 열린 유엔 총회의 휴전 촉구에 ‘지금은 전쟁할 때다’라는 대답으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응했다.

대부분의 서방 매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아니라 가자지구로부터 지난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서 1400여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한 테러조직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라고 보도한다. 이번 전쟁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지 간에 이미 1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비극을 거슬러 올라가면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던 팔레스타인을 국제연맹의 위임을 받아 통치했던 영국의 주도로 1948년 이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시점과 만나게 된다. 많은 유대인은 그들의 오랜 디아스포라의 삶을 끝내고 ‘약속의 땅’을 찾았지만, 그 땅에서 원래 살았던 아랍인에게는 나크바(재앙)의 시작이었다. 70만이나 고향에서 추방되어 이집트, 리바논, 요르단 등지를 떠도는 난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 인구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사는 미국은 영국의 뒤를 이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1946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총 1586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는데 이는 미국의 국가별 대외원조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이견이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휴전촉구 결의문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 전쟁이 몰고 오는 참상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잠재적이거나 간헐적으로 표출되었던 ‘반유대주의’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일거에 분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해당 정부는 고심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사는 프랑스는 물론, 홀로코스트라는 원죄의식 때문에 독일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유대주의 역사는 꽤나 오래다. 특히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유대인의 전형으로 삼은 성서해석으로 인해 11세기의 십자군 원정과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기독교로의 강제 개종과 박해를 피해 동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에게는 배신자, 고리대금업자, 기생충, 착취자 등의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결국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도 가능했다.

이스라엘이 곧 유대 국가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반유대주의와 반시온주의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온주의는 원래 동유럽과 러시아로 이주했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선조가 살았던, 시온 동산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에 그들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이었다. 초기에는 황당하게까지 보였던 이 운동을 정치적 시온주의라는 이념 아래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지도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1860~1904)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 국가건설에 초점을 둔 시온주의와 종교나 문화적인 맥락을 강조하는 유대주의는 종종 같은 내용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대 곧 이스라엘이라는 등식도 성립되었다. 그러나 유대인이 모두 이스라엘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인구의 4분의 1이 거의 아랍인인 조건에서 이스라엘이 곧 유대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근거로 자신도 유대계인 노엄 촘스키는 유대주의가 바로 시온주의라는 주장 안에 숨어 있는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비판을 곧 반유대주의라고 매도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비판까지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주장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극우세력이 지니는 반유대주의적인 성향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전쟁과 관련해서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언론매체는 눈에 띄게 좌파의 반유대주의를 겨냥해서 비판하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을 향해 이스라엘 편이냐, 아니면 테러리스트 하마스 편이냐를 다그쳐 묻는 식이다. 또 일부에서는 “유대인의 사회적 해방은 유대로부터의 사회해방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1844)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을 근거로 마르크스가 좌파 반유대주의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년기에 그의 아버지가 이미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사실 유대교와는 인연이 없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려고 시작한 오슬로 평화협정이 2000년 7월에 결렬되었던 것을 계기로 반이스라엘의 분위기도 확산했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강점 및 식민화 종식과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 보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 등의 영역에서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자는, 2005년에 시작된 국제적인 운동인 ‘거부, 박탈, 제재’(BDS)는 그런 예의 하나다. 이 운동에 적극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여성주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도 실은 유대계 출신이다.

독선적인 네타냐후에 대한 거부감에 더해 하마스의 공격으로 난공불락이라는 이스라엘 신화가 무너진 소식에 내심 기뻐하는 좌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이 심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대중적 시위와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리적·역사적으로 유럽은 그에 가까운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의 정치적 상상력 필요

가르쳤던 학생 중에는 팔레스타인 출신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무도 학업을 마치지 못했던 것 같다.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각종 정치활동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다 보니 학업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이름을 보면 곧 유대계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도 있을 수 있어 신상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때도 있었다. 대신에 미국에 있는 친지의 자식들이 유대계와 결혼할 수가 있어 이들을 통해서 유대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일반적인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우수해서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기에 유대계 사위나 며느리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특히 자녀 교육에서 한국인 부모와 비슷한 열정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섬기지 않는 유대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이런 긍정적 평가와 함께 한국교회의 성장과 북한선교를 표방한 ‘제2의 이스라엘’이나 ‘제2의 예루살렘’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후자는 예수가 부활했던 땅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데, 한국을 이스라엘과 연결해 제2 이스라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의아해진다. 태극기와 성조기와 함께 다윗의 별이 들어 있는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진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는 본디 화해보다는 갈등의 역사였다.

제2의 이스라엘도 실은 주로 유럽과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온 비교적 부유한 세대의 ‘제1의 이스라엘’과 달리 이의 주변을 맴돌게 된, 주로 중동지역에서 온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계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자의적인 이스라엘 이해는 일부 기독교뿐만 아니라 일부 학계나 언론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1997년 여름 당시 네타냐후 총리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젊은 정치학자는 이스라엘과 남한, 팔레스타인과 북한이 서로 같다는 것을 화두로 삼아 그와 대담을 시작했다. 동서독과 남북한을 단순하게 등치시켜 전개되었던 많은 통일 담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유엔 총회의 휴전촉구 결의안에 남한은 기권, 북한은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과 이스라엘과 함께 반대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한 이유를 결의문에 하마스에 대한 명시적 규탄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기권해서 이스라엘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은 독일은 이스라엘에 더 불리한 결의문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고, 또 주변 이해 국과의 협상통로도 열어 놓아야만 했다고 해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우리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을 펼치라고 새삼 요구하고 있다. 세계를 단순하게 그저 문명과 야만으로 갈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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