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연극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 정치와 연극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뉴스에 등장하는 많은 정치인의 얼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잘 다듬어지고 선이 아주 뚜렷한 눈썹이다. 처음에는 인터뷰에 등장하기 전에 했던 분장을 깜빡 잊고 지우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들어보니 그것이 아니라,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도 많이 하는 반영구적인 눈썹문신이라는 것이다.

눈썹문신도 정치라는 무대에 선 배우의 분장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 세상은 무대야. 인간은 모두 배우야. 모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인간은 평생 많은 배역을 맡게 된다’는 셰익스피어 희곡 <12야(十二夜), 또는 뜻대로 하세요>의 구절이 생각난다.

사실 정치와 연극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만큼 정치에는 연극이나 연극적 요소가 많다. 국회에서 대정부질의나 여야 간에 설전이 오갈 때 ‘삼류 연극’이니 ‘쇼하지 말라’, 또는 ‘막장 드라마 보는 것 같다’는 고성도 자주 나온다. 상대방의 발언에 내용과 진정성이 없다고 연극을 들먹이며 서로 비난한다.

정치인은 회의실처럼 비교적 그들에게 익숙한 작은 공간에서 주로 움직이지만, 정보매체가 만든 열린 공간에서는 당연히 공적인 인물로서 등장하고 행동한다. 이 경우에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원하든 원치 않든 배우 역할을 맡게 되고 이럴 때는 대개 조연이 아니라 주연 배우의 역할을 하려 든다.

그럼에도 정치와 연극 사이에 차이는 있다. 정치인은 비록 비서가 써준 연설문을 읽더라도 이 내용에 관한 책임을 지지만 연출에 따른 배우의 대사는 그렇지 않다. 가령 배우가 설령 무대 위에서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대사를 잘못 발성했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정치인이 그랬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연극은 정치가 아니라고 하지만 연극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늘 있다. 런던에는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 있다. 원래 위치에 있었던 극장은 1613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곧 복구되었으나 1644년 완전히 헐렸다. 오랜 고증작업을 거쳐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997년 복원된 것이 지금의 극장이다.

잉글랜드 내전(1642~1651)의 시작과 더불어 온 청교도 혁명 세력은 연극이 비도덕적이며 타락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모든 극장을 폐쇄했다. 이때 글로브 극장도 문을 닫았다. 당시 20만 정도의 인구가 살았던 런던에서 한 해에 약 1만5000명이 찾을 정도로 활발했던 연극 문화의 정치적 비중을 어느 정도 헤아려 볼 수 있다.

정치인, 연극적 언어·행동 일상화

오늘과 같은 정보사회에서 정치나 정치인에게 연극이나 연극적 요소가 지닌 언어나 행동은 일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게는 토크쇼에서부터 크게는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정치무대에서 펼쳐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각종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조건에서 정치와 연극 사이의 구별도 점차 힘들어졌다.

정치적 결정과 정책 내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매체를 통해 잘 연출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특히 지구화와 더불어 개별 국가의 역할이 여러 가지로 제한된 조건에서 이를 보상하려는 정치는 오히려 연출에 더 매달리게 된다. 매우 급한 사안 때문에 반드시 가져야 할 정상회담도 아닌데 수시로 열리면서 각종 매체를 동원해 지금 정치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수많은 정상회담을 가졌던 윤석열 대통령이 ‘폭풍 외교’로 받아낸 것이 초라한 성적표임을 확인한 많은 국민은 정치가 얼마나 연극에 가까운지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정치에 연극적 요소가 없다면 정치는 지루하고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한다는 반론도 있다. 정치에는 머리나 논리 또는 합리보다 가슴이나 정서 또는 감성이 먼저라는 것이다.

칸트도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서 인간은 대체로 문명화되면 될수록 배우가 된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을 그저 사기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이들에게 보여준 진정한 호감이나 배려가 처음에는 연극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점차 현실적인 덕목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표현이나 연출은 문명의 전제이자 동시에 이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기 연출은 과거와 달리 주로 디지털 정보사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자기 연출을 가능한 한 연극적으로 보이지 않게, 더 나아가 아주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기술도 발달해서 형식과 내용, 실제와 가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정치,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자

정치인이 등장한 사진이나 동영상의 연출 여부를 두고 논쟁이 심심치 않게 일고 있고, 작년 말에는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캄보디아 순방 사진 연출의 의혹을 제기했던 한 야당 국회의원이 검찰 조사까지 받는 일도 있었다.

정치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주로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TV와 같은 정보매체를 통해 알게 되었으나 이제는 이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된다. 현재 세계 인구의 약 60%가 각종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고, 한국은 그 이용률이 아랍에미리트연합(99%)과 대만(88%)에 이어 87%로 세계 3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셜미디어가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숙의를 통해 올바른 결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론장의 형성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하버마스는 <공공성의 새로운 구조 변화와 숙의의 정치>에서 비판적인 분석을 가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좋아요’ 또는 ‘싫어요’를 누르는 익명의 대중이 흡사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적 편지를 담은 정보공간이 공론장처럼 부풀려진 ‘사이비’ 공론장이라고 평가한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둔갑할 수 있는 이 공론장은 동시에 우리의 생활세계를 상품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네이버의 쇼핑 검색어 순위 조작을 둘러싼 논란이나 실제로 드러났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은 바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매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사회는 이미 들뜬 것 같다.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기존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위에 말한 소셜미디어에도 정치 기사의 독자에서 작성자로 변신한 소셜미디어의 이용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분석을 끊임없이 올린다.

그러나 정치 기사의 작성에 필요한 인지능력과 정치 기사를 읽는 독자의 역할 사이에는 사실 상당한 거리가 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도 자신의 정치적 인지에 결손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느낀다. 그래서 같거나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옳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게 된다. 일종의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조금 우습게 들릴지 모르는 예지만, 여권의 장래 대권 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촉망받는 한 젊은 장관의 두발을 두고 진짜냐, 아니면 가발이냐를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았다. 한편에서는 준수한 젊은 정치인을 희화화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트린다고 비난하고, 다른 편에서는 가발까지 쓰면서 자신을 참신한 이미지로 포장하는 정치인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것도 세계가 인정하는 ‘성형 민국’에서 벌어지는 성형 미인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부질없는 논란처럼 보인다. 진짜냐 가짜냐, 연출이냐 사실이냐를 두고 이런 식으로 서로 갈라져 싸우는 정치는 선거전에 돌입하는 새해에 들어서면 점입가경을 이룰 것이다.

배우의 모습을 배역에 맞게 변화시켜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곧 이해하게 하는 분장은 모든 무대예술을 완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연극 밖의 연극인 정치에서는 각종의 수단을 동원해, 연극이 진행되는 중에도 상대방의 분장을 지우려는 데 골몰한다. 이것이 연극과 정치의 차이다.

우리 삶은 연습이 없는 연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정치를 연극 보듯이 즐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재미는 없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 정치라면 이를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자.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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