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예산 복원 넘어 전환의 의제로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사회의 돌봄 위기 자체는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돌봄이 중심적 가치가 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필수노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돌봄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하며 돌봄을 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제기되었다.

2023년 11월 현재, 한국 사회 돌봄의 현주소는 어느 정도에 와 있다고 해야 할까. 일단 돌봄에 관한 관심 차원이나 돌봄을 얼마나 입에 자주 올리느냐는 차원에서만 보면 여전히 돌봄은 속된 말로 ‘뜨는’ 주제이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넘어서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돌봄의 대상을 인간 너머로 확장하자는 문제의식도 확산하는 중이다. 형식적으로 가족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내용상으로도 기존 사회규범에서 자유롭고 다채로운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를 포함하여 돌봄에 대한 새로운 담론도 많아졌다. 여성의 돌봄 노동과 일자리, 임금 격차를 주류경제학의 시각에서 연구한 클라우디아 골딘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도 올해의 일이다.

하지만 담론의 영역을 벗어나서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돌봄의 가치에 대한 상찬이 무색하게 돌봄의 현실은 명백히 퇴행 중이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및 돌봄 일자리와 관련된 다양한 예산의 삭감과 서비스의 축소이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청소년 정책 예산을 올해 대비 173억원 감축했다. 이로써 학교폭력 예방과 ‘근로청소년’에 대한 부당처우 방지 예산이 모두 사라진다. 여성폭력 방지 예산도 142억원 삭감되면서, 가정폭력상담소와 성매매 피해자 지원 사업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고용노동부에서 민간위탁을 하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산하 지역 거점 센터의 내년 예산도 전액 삭감되었다. 여성노동자들과 불안정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해소와 고충 상담을 담당하던 전국 19개 고용평등상담실 역시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예산삭감의 명분은 민간단체 등을 통한 간접 지원을 줄이고 정부의 직접 지원을 늘린다는 것이지만, 투입되는 절대적 예산이나 인력 모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좋아질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 정도면 돌봄 논의의 활발함도 돌봄을 둘러싼 현실의 열악함을 반영하는 듯하여 씁쓸할 지경이다.

공공돌봄서비스에서도 축소가 이뤄지는 중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2024년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 중 지자체 보조금 148억3400만원을 삭감하였다. 사회서비스원은 기존에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운영 방식 때문에 주로 시간제 호출노동으로 운영되는 돌봄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사회서비스 질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면서 만든 기관이다. 이런 공공지원의 공백을 메우는 건 급격히 플랫폼 노동화하고 있는 돌봄서비스이다. 가사와 돌봄서비스가 배달업을 앞지르면서,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 얼굴은 젊은 남성에서 고령의 여성들로 바뀌는 중이다. 주 52시간도 짧다면서 노동 시간을 늘리자는 논의가 끝없이 시도되는 사회에서 돌봄의 공백은 필연적이다. 돌볼 시간과 안정적 일자리를 함께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대로면 예산삭감의 횡포가 돌봄 지원을 좀 더 긴급하게, 남보다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삶에 가져올 재앙을 목격하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예산삭감이 문제적이라고 해서 예산 복원이 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을 비롯하여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이미 발생한 문제들의 해결을 돕는 기관이지, 그 존재만으로 성평등한 사회나 차별 없는 노동을 실현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은 예산삭감 이전에도 삶이 이미 위기였던 사람들의 버팀목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기관들과 예산을 지키는 건 중요하지만, 위기의 원인은 더 복잡하고 뿌리가 깊다. 사회서비스원 역시 공공기관을 통한 돌봄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한 하나의 실험일 수는 있어도, 돌봄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돌봄을 공공이 모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기돌봄도 타인을 돌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서 서비스화된 돌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문제적이다. 한편에서는 삭감된 예산을 복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그러나 삭감되기 이전의 예산이라는 게 우리가 쟁취해야 할 목표라고 할 수 없기에, 이대로 가면 후년은 더 어려워질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바로 이 시점이 오히려 더 크게, 더 세게 돌봄이 가능한 삶으로의 전환을 주장해야 할 시점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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