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와 학전블루 소극장의 앞날

서울 대학로 복판에 있는 학전블루 소극장이 폐업을 ‘예고’했다. 개관 33주년인 내년 3월15일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기간이 좀 남았는데 예고까지 하면서 폐업하겠다는 속사정이 궁금했다. 뜻을 가지고 소극장을 운영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학전블루 소극장은 아등바등하면서 잘 견뎌온 터다. 그런 듯이 보였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 30여년 동안 학전블루 소극장을 이끌어 온 선장의 유고였다. 그가 몹시 아프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누구든지 성한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기면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극장 운영은 무리일 것 같아 접기로 했어요.” 상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뮤지컬 작곡·연출가 김민기씨가 30여년 동안 일궈 가꿔온 ‘경작지’다. 1990년 전후로 대학로 일대에서 일기 시작한 소극장 운동의 한 축이 되고자 김씨는 이름을 학전(學田)으로 짓고 힘차게 출발했다. ‘배우는 밭’이거나 ‘밭이 되어 배움을 전하거나’, 여하튼 그런 의미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리하여 단체명은 학전이 되고, 공연장은 학전블루가 되었다. 1991년 바로 지금의 자리에서의 일이다. 거기서 비롯된 ‘어떤 한 편의 서사’가 내년 3월 저문다.

김씨의 반평생이 담긴 극단 학전과 학전블루 소극장 역사의 주역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혹자는 ‘한국 소극장 뮤지컬의 대명사’라고 하는데, 이 평가는 결코 과한 게 아니다. 의미로 보나 성과로 보나 마땅한 평가다. 그 이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1994년 초연 이래 2008년까지 14년 동안 총 4000회 연속 공연, 누적 관객 70만명이라는 계량적 수치로 드러난 성과 외에, 왜 그런지 이유 두 가지만 든다.

하나는 소극장 뮤지컬,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다. 접근 방식이 대중적인 데다 지나치게 상업성을 강조하니, 많은 사람이 뮤지컬은 커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다 그렇게 흘러갔고 우리의 뮤지컬 시장은 규모 경쟁에 나섰다. 그래서 공연예술의 맏이로 성장은 했지만, 한쪽으로 쏠림은 심해졌다. <지하철 1호선>은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미덕을 지키며 균형추 구실을 했다. 폐업을 앞둔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도 <지하철 1호선>이다. 지금 그곳에서 순항 중이다.

한편 뮤지컬은 서양에서 들어온 형식이므로 나름대로 토착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굳이 누가 치켜세우지 않아도 이미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은 김씨였지만, 그는 직접 창작 뮤지컬로 가지 않고 ‘번안(飜案) 뮤지컬’로 우회했다. 우회보다는 본격 창작 뮤지컬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표현이 낫겠다. 김씨는 마침 독일 베를린에서 흥행 중인 <Linie 1>에 주목했고, 이를 <지하철 1호선>의 텍스트로 삼아 번안했다. 우리말로 노랫말을 만들고 편곡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국어의 특성과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엮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지하철 1호선>은 강한 비트의 록 음악이지만 내용 전달에 무리가 없다. 오래 사랑받아온 인기 비결의 하나다.

학전블루 소극장과 <지하철 1호선>과 관련해 그동안 많이 회자한 이야기 중에는 ‘배우사관학교’라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담에 거론되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전설보다는 사실에 가깝다. 현재 뮤지컬과 영화를 주름잡고 있는 스타 여럿이 배우 초년병 시절에 <지하철 1호선>에 다양한 역할로 출연한 뒤 성장했다. 김씨의 의도대로 학전블루 소극장이 모를 키우는 경작지 역할에 충실한 결과다. 김씨를 보면, 뛰어난 선구안의 명타자 같다.

학전블루 소극장의 ‘예고된 폐업’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 관계 당국에 지원책을 호소하는 등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붐 조성을 위해 이 무대에서 활동했던 ‘통기타 가수들’의 릴레이 공연도 있을 거라고 한다.

학전블루 소극장에 저마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장소를 추억하면서 참신한 대안을 소망할 때, 그 공간과 선장인 김민기씨에 대한 나의 평가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서울사이버대 교수

정재왈 예술경영가 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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