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과 멀어지는 민주당

김택근 시인·작가

한 해가 저문다. 우리는 마지막 달에 몰려 있다. 어느 해보다 스산하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불길하고, 풍문은 흉측하다. 어둠에 묻을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지그시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 언 손을 비비며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무명씨들. 다가가 말을 걸고 싶지만 건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질 것인가. 한반도에는 다시 어둠이 몰려오는데, 지금 한국인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절망의 뿌리는 단연 정치이다.

21대 국회도 파장이다. 돌아보면 지난 4년 동안 의회권력을 양분한 거대 정당의 폭주에 나라가 흔들렸다. 국민들이 정치 걱정을 해야 했다. 양당은 어떤 세력에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여야의 극한대립으로 민심이 갈라졌고, 진영논리 외에는 어떤 주장과 담론도 뿌리 내릴 수 없었다.

과반 의석을 지닌 민주당은 장기집권을 장담하며 개혁을 미루다 역풍을 맞았다.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의를 따라야 하건만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았다. 몰라보게 살이 올라 뒤뚱거렸다. 끝내 민심을 잃고 정권도 잃었다. 작금 정부·여당의 막가파식 ‘언론 장악’ 국면도 집권했을 때 언론개혁을 했더라면 이런 참담한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땅을 치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넘겨준 것은 여의도 상공에 탐욕이 적재된 위성정당을 띄웠기 때문이다. 사견이지만 필경 맞을 것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든다고 하자 곧바로 정당을 급조했다. 다양한 세력과 함께 합의제 민주주의를 해보자는 작은 정당과의 약속을 걷어차버렸다. 국민은 깊게 실망했다. “작은 사람들이구나. 별수 없는 꾼들이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도덕성만큼은 우위에 있었던 민주당이 미래통합당과 똑같아져버렸다. 대통령 후보 이재명은 잘못을 시인하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이 다시 수상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정치개혁은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마지막 숨구멍인 연동형비례대표제만은 제대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당직자들이 군불을 지피고 있다.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자는 게 논리적 모순”이라 둘러댄다. 궤변이다. 그래서 제도를 바꾸자는 건데 제도 탓이다. 위성정당 방지법이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가. 거칠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비례대표 후보는 지난 4년 동안 제1당과 제2당의 당적을 가진 자는 출마할 수 없으며, 비례대표 당선자는 임기 중에 당적을 바꿀 수 없다.” 진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촘촘하게 손질하면 위성정당 출현은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당내에서조차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해보자는 목소리가 높은데 묵묵부답이다. 민심은 어제가 투영되는 거울이다. 어제 한 일이 오늘의 내 모습이다. 설령 지더라도 멋있게 지면 민심에 각인된다. 대의를 좇아 멋있게 져서 대통령이 된 김대중과 노무현이 있다. 우리가 아는 민주당은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독재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기에 풍찬노숙을 해도 자부심만은 높았다.

양당은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는 쉽게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공생을 통해 양당독재를 계속하겠다는 속셈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압승을 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그렇게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민주당은 손학규 전 대표의 조언을 받들어야 한다. “이들(군소정당)을 억지로 거대 양당에 가둬 놓고 극한대립의 소도구로 쓸 생각보다는, 이들을 독립시키고 우군으로 만들어서 연합정치의 기초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반대한다는 핑계에도 미리 못을 박았다. “탄핵은 과반으로 하면서 왜 이건(위성정당 방지법) 과반으로 못하나.”

민주당은 어쩌다 ‘내로남불 정당’이란 소리를 듣는가. 어쩌다 차세대 대권 주자가 솟아나지 않는 꼰대정당이 되었는가. 몸집은 엄청나게 불었는데 아주 왜소해졌다. 반칙과 사술(詐術)을 거부하고 역사에 길을 물었던 김대중과 노무현을 보라. 오늘 잘해야 내일이 있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과 멀어지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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