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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 화가들, 닮은꼴 사람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운동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자크 루이 다비드를 꼽는다. 평생을 여러 제왕에 기생하며 호의호식한 화가다.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미화하고 왜곡한 그림으로 역사를 조작했다.1801년 그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그 조작과 미화의 정점에 있다. 제목에서 보듯 그림의 주인공은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길을 나선 나폴레옹이다. 백마를 탄 그는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손을 들어 진군을 명하고 있다. 화면을 지배하는 위풍당당함과 패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장군 이상이다.그러나 실제의 나폴레옹은 왜소했다. 빨간 망토도, 백마 따위도 없었다. 노새를 탄 채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었다. 심지어 군대를 먼저 보내고 안전한 상태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불굴의 의지로 군사를 이끄는... -
‘인천아트플랫폼’의 폭력적 현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은 1종 미술관 및 공공공연장으로 등록된 복합문화공간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세워진 일본우선주식회사와 삼우인쇄소, 금마차다방, 대한통운 창고 등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예술인 창작공간과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역사 보존, 원도심 활성화, 예술 진흥이라는 목적을 안고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지난 10여년간 동시대 예술 창작과 유통, 향유의 중심이었다. 부재한 시립미술관의 소임을 대신해 300만 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켰고, 창작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 현재는 국내 대표적 예술 산실로 자리 잡았다. 쇠락하는 중구 구도심을 활성화시킨 일등 공신이다.인천아트플랫폼이 주요 문화예술 거점공간으로 설 수 있었던 데엔 국내외 예술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벌이는 ‘레지던시’(Residency)의 역할이 컸다. 비록 1년가량의 짧은 입주 기간에 불과했지만 예술가들에겐 그 자체로 ... -
‘사과’의 수난
예술의 역사에서 ‘사과’만큼 인기 있는 소재도 드물다.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들이 남긴 작품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을 법한 것들도 적지 않다. 사과 세 개(각각 정숙·청순·사랑을 뜻한다)를 쥔 여신을 그린 라파엘로의 ‘삼미신’을 비롯해, 최초의 정물화로 꼽히는 카라바조의 ‘과일바구니’,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사과로 얼굴을 가린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 입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통용시킨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등이 그렇다. 사과에 관한 한 진심인 작가도 있다. 바로 100점이 넘는 사과작품을 남긴 폴 세잔이다. 살아 있는 지각을 강조한 그는 오랜 시간 서양 회화사를 지배해온 원근법, 명암법 등의 전통적인 제작방식과 사물의 상징체계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연구하고 존재성을 부여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특히 그가 60대에 그린 ‘사과와 오렌지’를 포함한 몇몇 작품은 19세기 미술과 20세기 미술을 가르는 새로운 방... -
아트페어의 속성
아트페어(Art Fair)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장(場)이다. 스위스의 유명 아트페어인 아트바젤과 투자은행 UBS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대면 아트페어는 346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얼추 100개의 아트페어가 있다. 이 정도면 ‘아트페어 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하다.아트페어는 18세기 이후 본격화한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무대다. 성과는 매출에 있다. 예술작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존재 이유 역시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있다. 국내 최고의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한국국제아트페어)과의 공동 개최를 위해 올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프리즈 서울도 마찬가지다.그러나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는 지난달 17일 진행된 국내 간담회에서 자신들의 목적은 장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수준 높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를 페어의 의미로 꼽았다. 광의적 소통의 가... -
차라리 ‘AI 관장’이 낫다
미술관은 매체적·기호적·언어적 공간이자, 세상의 일부인 예술작품을 가장 기술적·효용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의 장소다. 미술관 종사자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시각 텍스트들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재현한다. 소장과 전시로 보다 많은 이들이 재현된 서사 구조와 서술 전체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예술가들이 생성한 텍스트를 재해석함으로써 삶과 예술 간 관계를 다시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 미술관 종사자들의 직무라면, 미술관장의 주요 역할은 다양하게 병치되어 있는 그 관계 중에서 특수한 요소를 선택하는 데 있다. 당대 예술이 처한 미적 가치판단의 불가능성 앞에서 일정한 방향과 좌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관장의 업무다. 다만 여기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미술의 경향과 흐름을 알아야 할뿐더러 미학적·미술사적 지식과 현장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 물론 관장에겐 미술관 행정 수장으로서의 책무도 부여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전문성과는 무관한 이들에게 공립... -
‘쇼를 하라’
2007년 ‘똑같은 걸 하느니 차라리 죽지’라는 다소 도발적인 카피를 내세운 텔레비전 광고가 있었다. 끊임없는 변화로 이동통신의 지각변동을 꿈꾸는 기업과 건강한 상호 소통적 메시지를 경쾌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풀어낸 백남준의 예술과 버무린 한 통신회사의 ‘쇼(SHOW)를 하라’이다. 이 광고에는 3D작업으로 부활한 고 백남준을 비롯해 ‘물고기 하늘을 날다’ 등의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생전의 모습이 담겼다. 1003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다다익선’을 포함해 권위에의 저항 및 모든 격식에 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피아노 부수기(총체 피아노)’와 같은 전위예술 역시 주요 장면으로 삽입됐다. 이 중 시청각을 넘어 감각까지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피아노 부수기’는 도래할 영상시대의 다면성을 반영하는 장치였다.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백남준의 예술행위를 빌려와 기존 이동통신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렸음을 알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쇼를 하라’는 부정... -
‘한국 실험미술’의 귀환
우리에게도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당대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사회에 만연한 불의에 저항하며 예술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 1960~1970년대다. ‘현대작가초대전’ 등이 열린 1957년을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보다 급진적 조형 실험이 이뤄진 시기는 1960년대다. 배경은 반체제·반문화적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을 비롯한 ‘프라하의 봄’ 등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국제흐름의 직간접적 경험에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국내 정치적·사회적 혼란도 실험미술의 불씨가 된다.이와 같은 국내외 정세는 예술가들에게 ‘현실’에의 직시와 금기시된 조형영역의 개척이라는 신념과 책임의식을 심어준다. 이에 당시 청년작가들은 기존 어법에서 벗어난 예술언어로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를 비판한다. 화단을 지배하던 문화 권력에의 염증, 제도의 모순과 낡은 관습에 대한 불신을 신선한 감각과 의식으로 버무려 타파해가는 ... -
인식 바꾸는 ‘동시대 공공미술’
도시 빌딩 앞이나 공원,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 어딘가에 조각 따위를 세워 놓는 ‘건축 속 공공미술’과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 여러 건조물을 장식하는 수단 혹은 일상에서의 미술 향유를 위한 수동적 시각 덩어리로 존재한다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훨씬 능동적이다. 감상자로 머물던 시민들은 행위주체로 새롭게 위치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미술의 언어로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익과 요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목적 자체도 다르다. 건축 및 공공장소 속 미술이 심미성을 전부로 삼는 반면, 동시대 공공미술은 민주주의적 실천 방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공동체 구현과 미술을 통한 ‘사회 변화’에 방점을 둔다. 이 때문에 관련 미술가들은 사회·정치·경제·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한다. 그리고 작가와 시민들에 의해 구현된 작품들은 단순한 ‘인지’를 넘어 세상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제안하며 행동으로 이끈다.대표적인 작품이야 워낙 많지만 내가 자주 언급하는 것 중 하... -
‘반발’ 속 논란의 광주비엔날레
격년제 국제예술행사인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7일 개막했다. 광주 일원에서 94일간 진행된다.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따왔다. ‘아무리 강한 것도 약한 물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유약하나 강인한 물처럼 여리면서도 강한 것이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전시는 절제와 세련미를 자랑한다. 현직 미술관 소속 리서치 담당자답게 이숙경 감독은 작가 79명의 다종다양한 작품들을 대체로 차분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다만 왜 여기에 놓였는지 모를 일부 작품은 이현령비현령에 가깝다.전시방식에서 두드러지는 건 어떤 걸 담아도 그럴싸한 주제만큼이나 현혹되기 쉬운 기교다. 실제 많은 이들은 그 솜씨에 깜빡 넘어간다. 하지만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가 무엇이 다른지는 스스로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 즉 비엔날레만의 역동적 파괴 모델로서의 존재성은 희미하다는 것이다.작품의 주제 또한 식상하다. 전시를 관통하... -
도시 속 쓸모없는 ‘덩어리’
2020년, ‘우리 동네 미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미술계를 강타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자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사업에 지자체 매칭 포함 약 1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일회성으론 역대 최고였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건 급조된 정부 정책의 민낯과 ‘졸속’이었다. 불과 서너 개월 남짓한 시간 내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작가들과 공공미술이 뭔지도 모른 채 정부 방침에 따라 동원된 지자체 행정기관들 모두 우왕좌왕했고, 중도 포기와 사업지 변경, 기한 연장 등이 속출했다. 1개 지자체 1개 프로젝트에 각 4억원씩 배분이라는 공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한 정책이었으니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건 당연했다.돈이 풀린 만큼 전국 공공공간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술작품이 들어섰다. 마을 주택 담장과 전통시장, 해안가와 개천, 산책로 등지에 온갖 조악한 작품들이 자릴 잡았다. 하지만 시각적·정서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