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6일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2576.20을 기록해 이틀 연속 하락했다. 올해 들어 26거래일 중 하락한 날(16일)이 훨씬 더 많다. 코스피와 흐름이 비슷하다던 미국 나스닥은 딴판이다. 올해 상승한 날(15일)이 하락한 날(9일)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말 대비 이날까지 코스피는 3.0% 떨어졌다. 해외 주요 증시는 대부분 오름세를 보인다. 미국은 나스닥과 S&P500이 3%대 후반 상승률을 기록 중이고, 장기간 거의 움직이지 않던 일본은 8% 넘게 뛰어올라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과 시가총액 규모가 비슷한 독일과 대만도 소폭 올랐다.
한국 증시에는 세계적인 기업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세계시장에서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 TV 등의 점유율이 선두권이고,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자동차를 판매했다. 2차전지도 한국 기업들이 각광받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중국과 수주량 선두 싸움을 벌인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는 오래전부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주식투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을 보자. 미래에셋증권 자료를 보면 1월29일 기준 한국 증시 PBR은 0.99였다. PBR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세계 증시 평균은 2.80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45개국 증시 PBR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에 불과한 41위였다. 전 세계 PER 자료를 집계하는 <WorldPerRatio>를 보면 2월5일 기준 한국의 PER은 10.4로 세계 평균(12.1)보다 낮다. PER은 주가가 한 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지 나타낸다. 20년 평균 PER도 한국 9.6, 세계 12.2로 한국 증시가 장기간 저평가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우리 증시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저평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달 중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가치 제고와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 수요기반 확충 등 세 축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투자자들은 지주회사 등 PBR 낮은 종목 찾기에 나섰고, 매수세가 쏠려 테마를 형성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이 전해진 뒤 이틀간 한화와 LG가 10% 넘게 급등했다. CJ와 SK, 롯데지주 등은 7% 안팎 크게 올랐다. 삼성물산도 8% 가까이 오르는 등 저PBR 종목들이 강세를 보였다.
최 부총리가 저평가 대응의 세 축을 지목한 것처럼 한국 증시는 기업이 주주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시장의 질서마저 오락가락한다. 주주보다는 ‘오너’로 불리는 총수 일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기형적인 지배구조 문제도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이 떠나가는 상황마저 빚어진다. 저평가의 원인은 단순히 PBR이나 PER 같은 지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애플 시가총액은 3845조원으로 삼성전자(444조원)는 물론 한국 증시 시총(2478조원)보다 많다. 2022년 기준 매출이 512조원으로 삼성전자(302조원)의 1.7배 수준인데 시총은 9배 가까이 크다. 애플은 설계만 하고 제조는 하청을 통해 해결하는 플랫폼 기업에 가깝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익을 끊임없이 투자해야 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이다. 이런 차이가 있더라도 주가 격차는 너무 크다. 2022년 애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75%로 삼성전자(17.1%)를 크게 웃돈다. 게다가 주주 배당에서도 삼성전자를 크게 앞선다. 이익을 잘 내고 주주친화적인 경영이 고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조만간 내놓기로 한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은 단기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증시 투자자를 붙잡아둘 수 있는 근본 대책이라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인위적인 주가 부양만 꾀했다가는 시장을 왜곡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한국은 가계부채 비율이 GDP 대비 105.1%, 가처분소득 대비 203.7로 세계 상위권 가계부채국이다. 정부가 서둘러 내놓은 증시부양책이 빚 투자를 유인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저평가 원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 상황을 보면 정부가 오히려 리스크를 키우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