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스러운 ‘약과’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문] 약과란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답] 밀가루 반죽을 넙적 혹 둥그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조각을 내어서 꿀과 기름에 흠씬 지져 내는 것을 유밀과라 하고 보통으론 약과라고 부르니 조선에서 만드는 과자 가운데 가장 상품(上品)이요 또 전무력(全懋力, 온 힘)을 들여 투박스럽게 만드는 점으로 세계에 그 짝이 없을 만큼 특색 있는 과자입니다.(이하 생략)”

1937년 신문에 연재했고, 1946년 책으로 나온 최남선(1890~1957)의 <조선상식문답>, ‘풍속(風俗)’에 수록된 ‘약과’의 한 대목이다. 이어 1948년에 나온 <조선상식>에서도 약과는 빠지지 않았다. 여기서는 약과를 “진역(震域, 우리나라)에 있는 최고급의 과자”로 일컬었다. 그래서였을까? 약과는 일찍이 구체적인 조리법이 남은 과자다. 장계향(1598~1680)은 <음식디미방>에 약과와 함께 연약과의 조리법을 써 남겼다. 이 책에서 약과보다 먼저 등장한 연약과는 ‘누런빛이 나도록 볶은 밀가루 1말에 꿀 1되 5홉, 참기름 5홉, 청주 3홉을 섞어 반죽해 기름에 지져, 식지 않았을 때 즙청(달콤한 즙액 입히기)’해 완성한다. 약과는 ‘볶지 않은 밀가루 1말에 꿀 2되, 참기름 5홉, 끓인 물 3홉을 넣고, 연약과 반죽보다 무르게 반죽’한다.

지금이야 수입 밀이 넘쳐나지만, 100년 전까지만 해도 고품위 밀가루는 과자에나 쓸 만한 귀한 자원이었다. 여기다 꿀에 청주까지 쓰다니, 약과를 대하는 감각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는 <규합총서>(정양완본) 유밀과 항목에서 약과를 유밀과의 대표로 내세우며 이렇게 설명했다. “유밀과를 곧 약과라고 일컫는 까닭은, 밀(蜜, 꿀)은 사계절의 정기(精氣)이고, 식료품 꿀(淸)은 온갖 약의 으뜸이요, 기름은 살충/해독하기 때문이다.” 빙허각 이씨는 약과 반죽에 꿀 2되, 참기름 반 되, 소주 한 보시기쯤을 쓰고, 숯불로 끓인 기름에 반죽을 띄워 수저로 눌러가며 지지도록 했다. 즙청을 위한 즙액에는 계피, 후추, 마른생강, 생강즙 따위를 더해 풍미를 훨씬 강화했다. 즙액이 식어 표면이 안정되면 잣가루를 뿌려 장식하도록 했다. 약 150년 전 장계향이 기록한 약과와는 또 다른 면모이다.

언제든 이어진 것은 반죽과 즙청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었다. 19세기 말에 쓰여 20세기에 필사된 <시의전서>는 밀가루, 꿀, 참기름, 청주나 소주를 준비하고, 먼저 끓는 물과 참기름을 한데 타 저은 다음, 밀가루에 고루 섞이도록 비비며 반죽의 끈기를 맞추도록 했다. 즙청에 잣가루와 함께 계핏가루를 더하는 방식, 소주를 쓰면 반죽이 연해진다는 안내도 이어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켜켜이 반죽을 접어 올리는 방식, 반죽에 콩가루를 쓰는 방식도 이어져왔다.

이윽고 오늘이다. 최저가 약과를 최저가 쿠키나 브라우니에 접착한 최저가 신상품은 꽤 보이는데, 싸구려 유지가 표면에 배어나오게 해 즙청을 생략한 최저가 약과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닌데, 그래도 섭섭하긴 하다. 이러면서 소담한 과자 하나를 잃을 판이니까. 책 펴고 문자로 약과를 맛보며 아쉬움이 자라는 즈음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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