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분간의 ‘윤석열 원맨쇼’가 알려준 것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의료개혁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지난해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이은 세 번째 담화였다. 관심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변화 여부에 쏠렸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유연한 대응을 요구해온 터다.

윤 대통령은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을 향해선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냐”고 몰아세웠다. “의료계가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논의할 수 있다”며 여지를 뒀지만, 방점은 ‘2000명 고수’ 쪽에 찍혔다고 봐야 한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없는 ‘원맨쇼’는 윤 대통령의 통치·소통 방식을 드러내는 ‘쇼케이스’였다. 사자성어로 분석해봤다.

① 우이독경(牛耳讀經·가르치고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함)

윤 대통령은 담화 내용 대부분을 의료개혁 추진 근거와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할애했다. △‘2000명’은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며 △한국은 외국과 비교해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고 △증원 규모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 등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사안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외면했다. 지금 시민은 2000명이 결정된 과정엔 별 관심이 없다. 당장 나와 내 가족이 아플 때 신속하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불안할 뿐이다. 정부가 안심할 만한 해법을 내주길 바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딴 소리만 했다.

② 일방통행(一方通行·한쪽의 의사만이 행세하거나 통하는 일)

역대 대통령들의 대국민 담화는 짧은 입장표명으로 끝나는 게 관행이었다. 윤 대통령의 담화는 이례적으로 길었다. 그는 51분 동안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선 채 1만자 넘는 문안을 읽어내려갔다. 대언론 브리핑을 위해 만들어진 브리핑룸에 출입기자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관섭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참모들만 배석했다.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도 올해도 신년 기자회견을 건너 뛰었다. 지난해엔 조선일보 인터뷰로, 올해는 KBS 녹화 대담으로 대신했다. 소통의 상징으로 자랑하던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은 ‘바이든-날리면’ 사건 이후 중단된 채 재개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지켜오던 관행을 무너뜨리고 있다.

1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가 생중계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가 생중계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③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안 맞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임)

윤 대통령은 “제가 정치적 득실을 따질 줄 몰라서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정치적 유불리 셈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방치되어,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까지 온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했다.

‘민주주의’를 아무런 맥락 없이 편의적으로 동원해선 곤란하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이가 누구인가.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지난달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42개국에 포함시켰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반영해 해법을 찾는 게 민주주의다. 오기와 독선으로 정책을 밀어붙여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건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다.

④ 군왕무치(君王無恥·왕은 부끄러움이 없음)

담화문 후반에서 윤 대통령은 “회피하고 싶은 인기 없는 정책도, 국민에게 꼭 필요하다면, 국익에 꼭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실천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자평했다. 한·일 관계, 화물연대·건설노조 대응, 원전 정책 등을 과감한 실천이 낳은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들 정책이 많은 비판을 받고 후폭풍이 여전함에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 기조를 거론하며 “정부 출범 당시 6~7%에 이른 물가는 건전재정 기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2~3%대로 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뜬금 없는 물가 언급은 “대파가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발언을 의식한 것으로 비쳤다. ‘대파’ 파동으로 고물가가 총선 핵심 이슈로 부각되자 억울했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이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숙였다. 말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설령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진다 해도 그럴 것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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