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G, 핵심은 경영자와 정규직 노조의 인식 전환

[김경식의 이세계 (ESG)] L-ESG, 핵심은 경영자와 정규직 노조의 인식 전환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 중 기업 관련 이슈로 우선순위를 준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와 해소를 가장 앞에 두고 싶다.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실시된 ‘노사협력(L)-ESG 국회 토론회’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산업정책연구원·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주최하고, 이호동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이사장이 주관한 토론회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전직 간부와 고용노동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우선 행사 타이틀이 ‘노사협력(L)-ESG’라는 게 특이했다. 고전적 노동운동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자본가를 타도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살아남은 제도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이유는 인간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의식주+α의 욕망을 채워주는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업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 탐욕을 가진 자본으로 운영하는 조직이다. ESG는 자본주의 진화 주체인 ‘기업의 지속 가능’을 위해 이해관계자와 따뜻한 공존을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던 노동자가 ESG를 노사가 같이해보자고 하는 것은 대단한 변화다. 특히 ESG를 강조하던 국제 금융자본이 꼬리를 감추는 요즈음 노동조합에서 고민을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

ESG, 산별노조서도 논의할 필요

이날 참석자들은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노동 현장의 고민과 대안을 진솔하게 소개했다. 정흥준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부의 편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해관계자 관점의 자본주의(ESG)가 대안으로 나왔다. 이는 기업의 경제적 가치(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보호, 인권 보호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런데) 2023년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전체 노동자 이익 도모(11.0%)보다는 노동조합 간부나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51.4%)이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면서 노동조합의 ESG 의제와 노사 공동의 과제를 제시했다. 대표적 사례로 산별노조의 핵심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적 제도화 및 직무평가를 통한 임금 체계’를 제시했다. 비록 발표자의 의견이지만 이러한 제안을 기업노조 체제에서 공개적으로 한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김현식 교수가 발표한 ‘노사협력 ESG 실천 가이드라인’도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구성이 매뉴얼처럼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대표적 사례로 환경(E) 분야는 재생에너지 확대, 사회적 가치(S) 분야는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보호,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거버넌스(G) 분야는 사회적 파트너십 활성화 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이주호 전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노동조합도 이제 임단협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노사정 주요 의제로 해도 될 정도로 의미가 있고 산별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가이드라인은 현장에서 바로 사용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내용이 좋다”고 평가했다.

많은 사회적 어젠다가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해소를 통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는 시급한 과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이 2014년 37.3%에서 2023년 40.5%로 늘어났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2004년 65% 수준에서 54%로 11%나 떨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옮길 확률은 2006년 11.7%에서 2021년 3.7%로 급감했다.

기업 현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애로사항 중 하나는 정규직 노조의 반발이다. 한 예로 2019년 서부발전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중대재해가 빈번한 도금업무는 외주화가 금지되었다. 이에 따라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는 도금업무 직영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직영 정규직이 아닌 직영 별정직으로 채용을 하게 되었다. 정규직과의 갈등이 중요한 이유였다.

‘이중구조 개선위’라도 구성해야

그러나 이제 대기업 제조업에 관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새로운 기로에 다다랐다. 2004년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씨에 의해 시작됐던 ‘근로자 지위 확인(근지위) 소송’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현대차·기아 소속 제조공장의 비정규직은 거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러한 판례 영향은 철강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1년 7월 현대제철은 협력회사 소속 직원 7000여명을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또한 2024년 1월 동국제강그룹의 동국제강·동국씨엠은 1000여명의 협력회사 직원을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그리고 CEO가 연초 공장 순시를 하면서 정규직 노조에 새로 입사한 노조원과 한 가족처럼 잘 지내도록 특별 당부를 했다. 철강업계는 이러한 사내 협력회사 직원의 정규직화가 다른 회사로도 확산되는지 여부가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 자동차 회사와는 달리 철강회사는 노동의 강도와 질적 차이가 매우 커서 ‘동일회사 다른 임금’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정규직으로 채용을 했다. 이러한 과정이 주는 시사점은 근지위 판결을 계기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기업과 산업으로의 확산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인식 전환과 함께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마침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위에서 소개한 L-ESG는 상대적으로 윤택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어젠다들이다. 이러한 어젠다들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2·3차 하청 노동, 불안정 노동, 프리랜서 노동자 등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격차 해소 방안이 함께 논의·추진되어야 한다. 우선 ‘이중구조 개선위원회’라도 구성해 정확한 통계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게 필요하다. 다양하고 일관된 통계는 그 자체가 문제의 인과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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