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50억원 미만) 중소기업에도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미 시행에 들어갔지만 중소기업중앙회는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중처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로 많은 고민을 해 온 필자 입장에서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 안타깝고, 아쉽고, 화가 난다.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를 들어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중소기업은 업종과 규모가 너무나 다양함에도 법 규정은 동일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막연하다. 안전보건 담당자를 채용하려 해도 구하기 어렵고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다. 기존 인원을 전환 배치하려 해도 여유가 없다. 부족한 인원에 준비해야 할 서류도 너무 많다. 실질적인 예방 활동이 아니라 조사에 대비한 보여주기식 서류 준비에 회의가 든다. 중소기업 현장의 실상을 너무 모른다. 한 예로 현장 직원들에게 안전모 착용을 권하면 바로 퇴사해 버리는 게 현실이다.
아쉬움이 크다. 법이 제정되고(2021년 1월26일) 1년 유예를 거쳐 50인 이상 사업장은 이미 시행 2년이 지났다. 중소기업도 준비할 시간이 3년이나 있었다. 대기업은 스스로 준비할 능력이 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열악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만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법 제정 1년 반이 지나서 발표한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2022년 11월30일)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중요한 시행 계획은 2024년부터로 돼 있다. 안전일터 패키지 프로그램 제공과 50인 미만 제조업의 노후·위험 공정 개선 비용을 지원하는 안전 리모델링 사업 추진도 2024년부터다. 안전보건 인력 2만명 양성은 2026년까지로 계획했다. 지난해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중소기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지원’도 내용·일정이 큰 차이가 없다. 2024년 1월27일부터 법이 시행됨에도 계획을 이렇게 했다. 더구나 막대한 조직과 예산이 있는 중소기업중앙회의 다양한 회원사 업종별·규모별 구체적인 예방 프로그램 매뉴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시간이 너무 아쉽다.
중대재해 급감…실효성 입증
화나게 하는 일은 일부 언론과 경제단체의 중처법 효과 무용 주장이다. 효과는 분명히 있고 때에 따라서는 엄청 컸다. 법 시행(2022년 1월27일) 이후 2년의 경과를 보면 알 수 있다. 2022년에는 사망자가 644명으로 전년 동기(683명) 대비 39명(5.7%)이 감소했다. 2023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500명대인 598명으로 전년(644명) 대비 46명(7,1%) 줄었다. 법 시행 2년의 효과는 85명(12.4%) 감소다. 이것이 반드시 중처법만의 효과라고 할 수는 없다. 건설경기나 제조업 가동률 감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효과와 각 사업장의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경험에 의하면 중대재해 예방은 분위기(안전의식)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2018~2021년 3년간 통계에 의하면 사고 요인 중 안전의식 미흡이 66.5%나 된다. 작업자의 안전의식은 정부의 정책 의지, 사법당국의 수사와 재판 같은 사회적 분위기, 현장 경영자의 노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가 크게 줄고 있다. 최근 3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60%인 월평균 30명이었다. 법 시행 한 달이 지난 2월28일 현재 사망자는 12명이다. 39일이 지난 3월5일 현재는 18명이다(언론보도). 법 시행 초기 안전의식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사례는 1년 전에도 있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중처법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난 2023년 1분기 전체 사망자는 128명으로 전년 동기(147명) 대비 19명(12.9%)이나 감소했다. 건설업은 71명에서 65명으로 6명(8.5%)이 감소했다. 제조업은 51명에서 31명으로 20명(39.2%)이 감소했고, 특히 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30명에서 9명으로 무려 70%나 줄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부 언론이나 경제단체가 중처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며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화나게 한다.
유예 아닌 법령 재정비 요구해야
중처법이 시행되고 1년 동안은 수사 지연 등으로 사법처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영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경영자(오너) 처벌의 적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도 많았다. 거의 모든 기업이 현장의 실질적인 사고 예방 활동보다는 로펌을 동원한 경영자 보호장치 도입에 주력했다. 그런데 중처법 대상 1호 사업장인 삼표산업 회장이 사고 1년여가 지나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등기임원이 아니어서 고용노동부 수사는 피해갔으나 검찰이 소환조사하고 기소까지 했다(2023년 3월31일). 이는 경영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한국제강 대표의 재판 과정은 각 사업장에 신속히 공유됐다. 결국 한국제강 대표는 법정구속됐다(2023년 4월26일). 2023년 1분기 사망자 급감은 이 시기 안전의식 고조와 관련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냈다(2024년 1월3일). 앞으로 유예가 되건 안 되건 회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 해소 방안을 정부·국회에 구체적·체계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즉 법이 모호하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회원사 업종별·규모별로 면벌을 위한 법적 최소 준수 사항을 예시하고 제정(制定)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대표는 그 자체가 경영책임자다.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처벌 대상이다. 그렇다면 중처법 처벌 수준 완화도 논리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 처벌(집행유예)로 망하는 게 아니라 조업 중단 장기화와 사법처리 지연으로 망할 수 있다. 따라서 ‘조업 중단 일수 단축’과 ‘신속한 사법처리’를 요구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유예가 아니라 중소기업 현실에 맞는 법령 정비와 정부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언론과 중소기업중앙회가 할 일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