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

(2) 금융사 위주 법·약관… 담보대출 채무자도 파탄 때까지 ‘무한책임’

조남희 | 금융소비자원 대표

시장경제의 근간은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하는 것이다. 국내외 사회·경제적 역학 관계에서는 힘의 균형추가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금융분야의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관계는 아직도 불합리한 갑·을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금융권의 갑·을 관계는 법적 측면의 미비나 약관 등 불공정한 제도 탓에 유지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법도 사회적 변화나 약자의 보호를 고려하기보다 금융사 중심의 편향적 판단을 해왔다. 금융사는 정보의 독점과 우월적 힘을 당연시하며 갑·을 위치를 유지해온 것이다.

[‘갑을관계, 이렇게 바꾸자’ 릴레이 기고](2) 금융사 위주 법·약관… 담보대출 채무자도 파탄 때까지 ‘무한책임’

대출은 어떤가. 통상 은행들은 분명 담보를 보고 담보대출을 한다. 담보대출은 제공한 담보물로 한정하여 대출을 판단하고 회수해야 함에도 광범위하게 채권을 확보하려는 은행의 행태가 여전하다. 대출 후 연체가 되면 관행적으로 손해를 줄이기 위해 대출자의 다른 재산이나 급여를 압류하기도 하는 등 대출자를 압박한다. “담보가치의 감소 등의 사유로 은행의 채권보전상 필요하다고 인정된 때에는 채무자는 은행의 청구에 의하여 은행이 인정하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기한의 이익이 상실한다”는 여신거래 기본약관으로 대출자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대출자를 파탄에 이르게 한 명백히 불공정한 약관이다. 은행들은 이러한 약관이라는 우산 아래 ‘갑’ 행세를 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부동산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는 국내외의 외부적인 어떠한 경제 쇼크에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사가 분명 대출 시에 충분한 담보라는 판단하에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했지만 담보에만 책임을 한정하지 않고 모든 위험을 대출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이다.

은행은 기업자유예금에 대해 지난 10년간 ‘7일간 무이자’ 방식을 적용해 1600억원 정도의 이자를 편취했다. 당장 조사해야 할 상황인데도 은행의 이자 편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상품인 특정금전신탁을 높은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처럼 판매해놓고 손실이 나면 모든 책임을 금융소비자에게 돌린다.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서민·노년층에게 집중 판매하고도 구매 책임만 지운다. 정기예금보다 400배나 이익이 많다며 판매한 키코 사기, 수수료 폭리 등 은행의 갑 행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당국은 별다른 조치가 없다. 결국 금융권의 ‘갑’의 위치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비호 덕분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비호가 없다면 이 시점까지 어떻게 유지해 왔겠는가. 금융권의 갑·을 문제를 모범규준의 제시나 지침 개정 정도로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금융권의 갑·을 문화가 지속되는 것은 금융의 모든 영역을 은행이 잠식해 금융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융권역 간에도 갑의 횡포가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중견기업이던 증권, 보험, 자산운용, 카드사업도 점점 중소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핵심고객’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핵심고객에 집중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그러나 핵심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금융소비자가 핵심이다. 금융소비자를 우선 생각하는 핵심원칙이 금융영역에 자리 잡을 때 한국의 금융회사는 세계적인 금융기업이 될 것이다. 금융사는 금융상품 판매가 아닌, 만족한 고객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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