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에 대한 공무원의 ‘지위남용죄’ 제정을

박경신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형법이 반헌법적 사태들의 연이은 발생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공무원들이 공무원의 의무를 회피하거나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경우 마땅히 처벌할 만한 법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기고]국민에 대한 공무원의 ‘지위남용죄’ 제정을

대법원장이 자신의 조직 예산증강을 위해 재판의 결과나 진행속도를 청와대에 유리하게 변조하려 한다거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국가지원사업에서 제외한다거나 대통령이 자신의 친구가 전유할 수 있도록 국가재산을 전용하거나 사기업재산을 갹출하도록 하는 행위 등은 도덕적·헌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신체 및 재산적 피해 예방을 중심으로 구성된 형법에는 마땅한 처벌조항이 없다.

물론 감사를 통한 징계를 할 수 있지만 직업적 징계는 해당 공무원 상급자의 권한이어서 국민들의 의구심이 제대로 해소될 수 없고 외부인까지 포함한 진실규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행정소송·민사소송에 의한 직무처리의 정정은 재발방지 및 일벌백계의 차원에서는 효용이 떨어진다. 결국 검찰이 강제수사권을 가지고 압수수색 및 구금상태의 신문을 동반한 형사적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가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는 상급자의 잘못된 지시로부터 하급자를 보호하는 외관을 취하고 있다. 상급자 자신의 권한, 즉 ‘직권’하에 있는 하급자에게 부당한 의무를 부과한다거나 하급자의 정당한 권한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위법성 요건이다.

하지만 양승태, 블랙리스트, 최순실 사태 모두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하급공무원들이 피해를 봐서가 아니라 상급자들의 지시 자체가 객관적으로 잘못되어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보호법익이 다르니 비상식이 발생한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하급공무원이 재판에서는 “하기 싫었지만 상부의 지시라서 어쩔 수 없었다”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여 처벌을 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업들에 대한 강요가 대통령의 직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2심에서 상당 부분 무죄가 선고되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대통령 직권 밖의 일을 했다면 더욱 잘못일 텐데 하급자의 직무나 권한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양승태에 대한 사법처리도 결국 거래대상이었던 재판의 담당판사들이 ‘유죄하고 싶었지만 대법원 지시로 무죄했다’고 울부짖지 않는 한 양승태의 핵심적 악행에 대한 적용법죄도 불분명해진다.

직권남용죄는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행정업무를 마비시킬 수 있는 과잉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당장 2016년 말 최순실 사태에 직권남용죄가 적용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2017년 들어 원래 거의 없었던 공무원에 대한 직권남용죄 고소·고발이 7000여건으로 폭증하였다. 최순실 사태 이후 상급자의 지시에 어떤 이유로든 오류가 있다면 그 지시를 전달받은 하급자가 피해를 본 것으로 간주하여 쉽게 처벌할 수 있다는 법률오독이 확산되어 각종 행정상 오류를 모두 형사화하려는 욕망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블랙리스트의 재발을 막겠다며 ‘예술행위방해죄’ ‘예술지원차별죄’ ‘예술지원불공정심사죄’ 신설을 준비 중인데 이 역시 불공정성 등의 오류 자체를 범죄시하겠다는 무리한 시도로서 도덕의 형사화 욕망에 또 다른 불을 지펴 예술 자체만큼 복잡한 예술비판, 예술지원, 예술심사 행위를 검찰의 칼날로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앞으로 공무원에 의한 반헌법적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공권력에 의거한 기본권 침해죄’를 제안하고자 한다. 미국연방법 제18장 제242조는 ‘직권’ 포함 여부를 불문하고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미국에서는 주로 경찰폭력에 한정되어 운용되지만 이론적으로 표현·사상의 자유나 재산권에도 넓게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급공무원의 피해 여부가 아닌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에 대한 헌법적 판단에 따라 공무원의 지위남용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공무원들도 ‘재판거래’ ‘정부비판자 제외’ ‘친구 몰아주기’ 같은 의도적인 반헌법행위가 아닌 이상 일상적 행정오류가 범죄시되는 것을 피하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