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 특정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이러한 찬반 균열 구조는 유권자들의 정당 및 후보 선택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엊그제 선거관리위원회가 대운하 건설 반대 집회나 서명운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한 것은 선거의 본질,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라고 하겠다. 물론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의 대상을 “정당이나 특정단체 회원이 아닌 일반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대운하 건설을 찬성·반대하는 홍보물을 게시하거나 토론회·집회를 개최하는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찬반 행위를 모두 단속하겠다는 형식적·기계적 균형을 취하기는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개적 찬성 행위는 거의 없고,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조처는 반대론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정부 여당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선관위의 대운하 반대 봉쇄 조처는 헌법에 명시된 집회·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법관이 위원장으로 있고, 수많은 법률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이처럼 위헌적 요소가 가득한 조치를 내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선관위의 이번 조처가 합법에서 불법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당초 선관위는 대운하 반대 서명운동과 토론회가 선거법상 위반행위가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렸으나 3일 만에 돌연 불법행위라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관리해야 할 선관위가 정부 여당의 홍위병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노골적인 관권선거”라는 야당의 비난성명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관위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들의 입과 발을 묶겠다는 위헌적·반민주적 발상을 거둬들여야 한다. 선관위가 공명정대한 선거관리는커녕 ‘정권옹호위원회’라는 비난을 자초한다면 더이상 선관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