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번방 주범 조주빈에 내려진 42년형 확정의 의미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등의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징역 42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의 상고심에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고, 양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 4명에게도 각각 징역 7~13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조주빈이 받은 형량은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다. 조주빈 일당을 ‘범행을 목적으로 조직·활동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하는 적극적인 법 해석에 따른 결과이다. 이번 판결은 이른바 n번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더 이상 개인의 일탈 정도로 보지 않고, 조직적 인권 유린 범죄로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무관용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주빈은 아동·청소년 등 피해자를 협박해 성 착취 영상을 촬영하게 하고, 이를 영리를 취할 목적으로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박사방’ 일당에 대해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했고, 재판부는 두 재판을 병합해 심리했다. 박사방 사건은 그동안 실체도 분명하지 않고 가볍게 여겨졌던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리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범인들은 피해자들을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유인한 뒤 노예 취급을 하며 협박하는 등 인격살인과 같은 잔인한 수법을 보여 큰 충격을 줬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를 엄단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양형 기준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그 뿌리 깊은 범죄를 일거에 없애기는 쉽지 않다. 소수의 범죄자만을 악마화하는 분풀이식 처벌이나 들쭉날쭉한 수사와 판결로는 범죄를 효과적으로 막기 어렵다. 수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일관된 엄벌 의지를 보여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사법 감시망이 느슨해지면서 언제든 유사 신종범죄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불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성인지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동료 시민을 거래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디지털 성범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번 중형 선고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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