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 후보의 차별금지법 인식, 실망스럽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몽 스님 등이 지난 8월30일 서울 종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국회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몽 스님 등이 지난 8월30일 서울 종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국회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차별금지법에 대해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이고 갈등 원인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 8일 한국교회총연합회를 방문해 “헌법정신에 따라 모든 분야, 영역,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이같이 밝혔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에 대해 ‘원칙적 찬성’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속도 조절론’을 제기한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한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 후보의 발언은 기독교계를 만난 자리에서 나왔음을 감안한다 해도 실망스럽다. 현재 국회의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는 매우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안 4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구체적 심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지난 2일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정기국회 내에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아직 단독 처리 여부를 언급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 이 후보는 ‘일방통행식 처리를 안 할 것’이라는 말로 논의 진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차별금지법을 바라보는 이 후보의 인식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후보는 “당장 닥친 위험의 제거나, 반드시 필요한 현실적 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한 사안이라면 모르겠지만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하는 방향을 정하는 지침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올해 상반기 성소수자 시민들의 잇단 부고가 전해졌다. 변희수 전 하사와 인권활동가 김기홍씨, 극작가 이은용씨 등이다. 이들은 차별과 혐오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스스로 세상과 결별했다. 사회적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차별받는 시민들이 도처에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과연 “당장 닥친 위험”이나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이 후보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혐오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의 합의가 필요한가. 이 후보는 발언의 진의를 분명히 하고, 다른 정당 대선 후보들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공존 여부는 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전 문제로 직결된다. 약자·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막지 않는다면 심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14년간 미뤄온 차별금지법 입법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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