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재, 불체자 관리 위해 이주노동자 인권 제한 필요하다니

헌법재판소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용허가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3일 외국인고용법의 관련 조항 및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정한 고용노동부 고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낸 헌법소원 청구를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장기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10년 만에 또다시 정당성을 부여한 헌재 결정이 유감스럽다.

외국인고용법 등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3년 안에 최대 3회 직장을 옮길 수 있지만, 사용자 승인이 있거나 부도·임금체불 등 극히 예외적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 성폭력 등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옮기지 못한 채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권을 극도로 제약하는 고용허가제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헌법 가치와 정면충돌한다. 유엔 자유권 규약·국제노동기구(ILO)협약·이주노동자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에도 위배된다.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된 사안을 심리하며 “불법체류자 증가”를 언급한 헌재의 인권감수성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헌재는 또 “외국인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면 사용자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용허가제가 사라지면 이주노동자의 이직이 잦아져 기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조차 최근 이 같은 우려가 타당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업장 변경은 노동 중단과 소득 감소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주노동자가 굳이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농·어업과 제조업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정부와 국회는 조속히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개선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절규하듯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의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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