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대사인 청와대 이전, ‘깜깜이 군사작전’처럼 할 일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통령에 취임하는 5월10일부터 용산 집무실에서 근무하고 청와대는 시민에게 개방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이웃한 합참 청사로 옮기고, 한남동의 육군참모총장 관저에서 상당기간 출퇴근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대통령 당선 후 5일 만인 지난 15일 인수위에서 국방부 청사를 처음 답사한 뒤 다시 5일 만에 윤 당선인이 초고속으로 ‘용산 이전’을 확정한 것이다. 국가의 대사를 마치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이면서 불통·졸속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취임 전부터 일방적·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윤 당선인은 당초 광화문 청사 공약에 대해 “정부기관 이전과 경호, 교통·통신 불편과 경제적 피해가 심각했다”고 밝혔다. 당선 후 보고 받아보니 ‘광화문 집무실’ 공약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고 했다. 대선 때 충분한 점검 없이 무리한 공약을 내놨다고 인정한 것이다. 윤 당선인은 용산 청사 장점으로 안보시설과 반환받을 미군기지가 가까이 있고, 경호 조치로 시민 불편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1948년 정부 수립 후 74년간 대한민국을 지휘한 청와대를 옮기면서 설계도와 조감도를 급조한 흔적이 역력했다.

‘국민 속으로’를 외친 윤 당선인의 새 집무실 구상이 제대로 실현될지도 의문이다. 청와대에 버금갈 만큼 용산 국방부 청사도 시민 접근이 제한되는 군사시설이다. 게다가 인수위는 집무실 인근 용산공원 조성을 최대한 당기겠다면서도 시위는 금지할 예정이라고 했다. 멀리 펜스 너머로 집무실이 보일 뿐 민원·집회·시위하는 광장과는 멀어지는 셈이다. 한남동 공관에서 집무실까지 3~5분 출퇴근할 때 빚어질 교통·통신 불편도 문제다. 청와대에 가지 않겠다는 목표만 정해놓고 여론수렴이나 준비 없이 서두를 일이었는지 두고두고 시험대에 설 상황이다.

안보 공백 우려도 가벼이 볼 수 없다. 윤 당선인은 “(군과 시설은) 가장 빠른 시일 내 효율적으로 이전하겠다”며 합참은 향후 남태령의 수방사 쪽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4000여명의 군인·군무원이 본격 이사하고 청사를 개조하는 4월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이 우려되는 태양절(4월15일)이 있고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예정돼 있다.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와 국방부 군사지휘본부를 통합하는 난제도 풀어야 한다. 전직 합참의장 11명이 왜 안보공백을 걱정하는 성명서를 냈는지 유념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 비용은) 기획재정부와 법적 범위에서 다 협의했다”며 내주에 496억원의 예비비를 국무회의에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청사 리모델링과 합참 이전, 경호처 이사와 한남동 공관 리모델링에 쓸 비용을 산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방 전문가들은 “단순한 이전 비용일 뿐”이라며 향후 합참 이전 시설의 EMP(핵전자기파) 공격 방호시설 구축비(2000억원)와 연쇄적인 군·시설·정보통신 이전 비용 등을 합쳐 수천억원의 국방비가 추가될 걸로 봤다. 인수위법상 예비비 사용범위는 ‘당선인 예우와 위원회 설치·운영비’로 제한돼 청와대 이전 비용은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 정부와 국회는 보다 투명하게 예산 검증·집행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윤 당선인은 굳이 청와대 이전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일단 들어가면 청와대를 벗어나기 더욱 어렵다고 봤다”고 했다. 청와대 입주 후 속도를 조절하자는 보수 진영 내 이견도 귓등으로 흘렸고, 공약 변경에 대한 사과는 없이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속도 내는 이 사업은 인수위를 뒤덮는 1호 공약이자 블랙홀이 됐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의 혼선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리수가 없는지 되짚어야 한다. 대역사의 모든 책임이 윤 당선인의 몫임도 분명히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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