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당선인과 측근들의 ‘답정너’식 불통정치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불통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이 대선 후 16일째 공전하고, 집무실 용산 이전 밀어붙이기도 반대 여론에 부딪혀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인수위 업무보고도 미래형 정책 대화보다는 검찰권 강화와 여성가족부 폐지를 두고 불협화음만 도드라졌다. 국민소통시대를 열겠다는 윤 당선인 약속이 일찌감치 시험대에 올랐다. 국정 인수·설계 시점부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 갈등과 불통정치가 우려스럽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25일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몇가지 옵션(선택방향)을 만들어 당선인의 판단을 받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단체 의견 수렴은) 간담회로도 진행하는 게 있다”며 정부조직 개편 시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전날 여가부 폐지 질문에 “공약인데 그럼. 선거 때 국민에게 거짓말한다는 이야기인가”라고 재차 쐐기를 박았다. 인수위는 이날 이례적으로 30분 만에 여가부 업무보고를 짧게 끝낸 뒤 “어떻게 발전·개편할지 부처 입장은 있었지만, 정리가 안 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인수위의 여성단체 의견 수렴과 대안 논의는 답을 정해놓고 구색 갖추기에 그칠 소지가 커졌다.

윤 당선인이 취임 뒤 통의동 집무실에서 유사시 ‘국가지도통신차량’을 이용하겠다는 구상도 궁색해 보인다. 미니버스 크기의 이 차량은 재난안전통신망·국가비상지휘망을 갖춘 이동용 지휘소이다. 북한 도발이나 대형 사고·재난이 났을 때 통의동에서 가깝고 방호·지휘 시스템이 완비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벙커) 활용 방안이 거론됐으나, 윤 당선인은 비상·임시수단인 ‘버스 화상회의’를 대안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절반이 넘는 용산 이전 반대 여론도 윤 당선인은 “의미 없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근무를 “가능성 제로”라고 선긋고, 국정 유연성을 바라는 여론에까지 귀를 닫고 있다. 검찰개혁 방향에 이견을 보인 법무부를 향해 “무례하다”며 업무보고를 순연시킨 인수위도 위압적이긴 마찬가지다.

윤 당선인 주변에서는 “시간은 우리 편”이란 말이 들린다. 5월10일 취임이 다가올수록 힘이 붙을 걸로 보는 것이다. 지나온 역사가 그랬지만, 그 또한 근시안이다. 정부조직개편과 총리 임명, 검찰 공약은 여소야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청와대와의 갈등이 여야 갈등으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 윤 당선인은 박홍근 민주당 새 원내대표에게 “협치를 희망하는” 축하전화를 했다. 야당과 여론과의 소통이 없는 정치는 ‘말로만 협치’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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