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동훈의 법무부 장관 직행, 가당치도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내각 2차 인선을 발표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운데)를 소개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내각 2차 인선을 발표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가운데)를 소개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법무부 장관 내정자로 한동훈 검사장을 지명했다. 한 내정자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낼 때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지낸 ‘복심(腹心)’이다. 윤 당선인이 취임하면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발탁될 것이란 관측은 있었으나, 법무부 장관 내정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이다. 법무부 장관은 법무행정 책임자이자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통해 수사를 통제하는 권한까지 갖는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은 물론 다른 장관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 이유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볼 때, 한 내정자 인선은 부적절하다.

한 내정자는 윤 당선인의 측근 중 측근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거의 독립운동처럼 (정권 수사를) 해온 사람”이라고 한 내정자를 상찬한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총장이 정치로 직행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검찰이 정권의 수족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윤 당선인은 검찰 예산의 독립편성 등 검찰권 강화 공약까지 내놓은 터다. 이런 마당에 측근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는 건 검찰권력을 사유화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윤 당선인은 부인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전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하자 초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 ‘검수완박’ 졸속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최측근을 내세워 검찰을 직할통치하겠다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한 내정자는 ‘검·언 유착’ 의혹(채널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으로 2년간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 6일 무혐의 처분되긴 했으나 사유는 증거 불충분이다. 검찰에 압수당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사수’함으로써 면죄부를 받았다.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중립을 위해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장관에 비정치인을 기용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핵심 측근들의 기용이었다. 행안부(이상민)는 윤 당선인의 고교·대학 후배, 법무부는 검찰 후배에게 돌아갔다. 윤 당선인은 최근 대구·경북을 방문하며 시장을 순회하는 등 선거운동에 가까운 행보로 비판받았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정치적 중립 의무를 팽개치겠다는 건가.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 내정자 발탁이 드러낸 윤 당선인의 리더십과 용인술이다. 윤 당선인은 한 내정자를 소개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법시스템을 정립하는 데 적임자”라고 밝혔다. “미국변호사이고, 영어도 잘한다”고 부연했다.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는 데 미국변호사 자격증이나 영어 실력이 무슨 상관인가. 윤 당선인 스스로 이번 인사가 시민 눈높이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판 여론을 예상하면서도 밀어붙인 것은 민주적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 과정에서 보인 독선적 스타일의 재연이다.

인사청문 정국에 검수완박 갈등이 겹치며 여야가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다. 이런 때에 한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통합과 협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지명을 철회하거나 당사자가 사퇴하는 게 더 큰 혼란을 막는 길이다. 한 내정자는 억울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두가 윤 당선인이 자초한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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