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 돌아보아야 할 한국 교육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지난 5일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오래된 난제들을 해결한 공적을 인정해 허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허 교수가 미국 국적자이지만 초등학교부터 석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마친 만큼, 국내에서도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그의 수상을 한국 교육이 일궈낸 ‘성취’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덕이 아니라,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예외적 성취’에 가깝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고교 1학년 때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6일 수상기념 화상 브리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과목 중 하나로 수학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크게 정을 못 붙였지만 게임이나 퍼즐 등 논리적 사고력을 요하는 종류의 문제에는 자연스럽게 끌렸다”고 말했다. 그의 과외교사로 일한 적 있는 김철민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도 “정답을 잘 맞히고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이 푸는 기준에 비춰선 인상적이지 않았다”(연합뉴스)고 회고했다. 수학적 논리력과 사고력을 측정하기보다 입시용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한국 수학교육의 폐단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허 교수는 대학 진학 후에도 방황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시인을 꿈꿨던 그는 전공인 물리학 공부에서 낙제점을 받고 학업을 쉬기도 했다. 대학 3학년 이후 수학에 눈을 돌린 그는 일본의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타 헤이스케를 만나 비로소 수학자로 눈을 떴다.

허 교수의 성취에는 유명대학 교수 부모 아래서, 스스로 잠재력을 시험해볼 기회가 열려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터다. 여기에다 순탄치 않은 이력이 학자로서의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수상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한국의 영재교육·선행학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허 교수가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입학한 2000년대 초반은 선행학습을 한 특목고 출신 ‘수재’들이 대거 진학한 때였다. 그 많던 수재들이 지금 어디 있을지 생각해보라. 허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신문 인터뷰에서, 좀 더 일찍 수학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쉬울 때가 있다면서도 “내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이 적어도 내겐 최적의 경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고교 과정까지 공부해두지 않으면 큰일 날 듯 조바심 내는 한국 부모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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