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U의 ‘원자력 택소노미’, 원전 확대 신호 아니다

유럽연합(EU) 의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투자기준인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 위기가 심화된 데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결정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다. 원전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써야 하며, 고준위폐기물 처리방안(부지 선정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연착륙을 위해 당분간 원전이 필요하지만,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EU 결정으로 내달 환경부가 발표할 예정인 한국의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에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2030년까지 전체 전력에서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리는 에너지 정책을 내놓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원전을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되고 노후 원전 가동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원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처지에서 원전 가동을 재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원자재값 폭등으로 화력발전 단가가 높아지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2018년 9%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도 3년 만에 반등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원전 없이 전 세계 탄소중립 달성은 어렵다”며 기존 원전의 가동연한 연장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EU의 결정이 원전을 마구 확대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EU가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하며 제시한 조건에 비추면 한국이 원전을 확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고준위폐기물 처분 시설의 경우 세계적으로 스웨덴과 핀란드만 확보하고 있는데, 건설하는 데 30년 넘게 걸렸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관련 시설 부지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도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니다.

답은 원전으로 전력공급을 안정화하면서 청정에너지 비율을 서둘러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새 에너지 정책 방향에는 원전 활성화 방안만 도드라질 뿐 재생에너지 증대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EU의 결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원전 확대에 나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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