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술핵 재배치도 모자라 비핵화선언 파기 언급하는 여권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2일 페이스북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는 물론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발언을 한 데 이어 집권여당 대표가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공동선언은 한순간에 파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현실도, 선언의 역사적 맥락도 모른 채 대북 강경발언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여권 대응이 한심하다. 정 비대위원장의 성급하고 무책임한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로 공동선언 의미가 퇴색됐다는 정 비대위원장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 보유국을 천명하고 전술핵운용부대 훈련까지 하는 마당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공동선언을 파기하자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다. 1991년 12월 남북이 약속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선언’은 30년 넘게 한반도 비핵화 준거틀로 기능해왔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이 선언을 파기하면 북한은 그나마 있던 고삐마저 풀고 무력시위 강도를 더 높일 것이다. 게다가 비핵화 선언 파기는 핵무장론을 부추긴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핵을 갖자는 주장이 커질 경우, 한반도는 핵 아노미(혼돈) 상태가 될 수 있다. 역대 보수정부가 비핵화 공동선언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여권 내부에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자는 논리가 부쩍 강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전날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하자, 정 비대위원장은 이날 “결단의 순간”이라고 거들었다. 당 중진인 김기현 의원은 아예 “우리 스스로도 핵능력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며 핵무장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전술핵 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위배된다. 비확산 기조를 고수하는 미국도 동의하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이날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국에 물어보라”고 일축하며, 외교와 관여로 전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권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안보팔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특히 정 비대위원장은 전날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냉정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아야 할 여권이 오히려 안보 불안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권이 현실성 없는 전술핵 배치와 핵무장 주장에 매달릴수록 해법은 멀어진다. 자칫 한·미 양국 간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여권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대응하면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굳게 지키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집권세력으로서 책임감을 되새기길 바란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