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드러난 동거·사실혼 차별, ‘법적 가족’ 범위 넓혀야 한다

동거나 사실혼 상태의 남녀 10명 중 3명꼴로 정부 지원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도 가족과 출산 조사’ 보고서를 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배우자나 애인 등과 함께 사는 응답자의 28.3%가 주거정책·건강보험·세금 등 정부가 지원하는 혜택에서 제한받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21.2%는 가족 간 마일리지 통합 등 일상생활 서비스 혜택에 제한이 있었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달라지는데도 법과 제도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조사 응답자들은 모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절대다수인 96.7%가 현재 함께 사는 상대와 부부(혼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나 친구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가 47만가구를 넘었고, 비친족 가구원도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동거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62.7%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는 최근 동거 가구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여가부 행태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이며, 가족 개념을 확대하고 폭넓게 지원하는 국제사회 조류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인구문제는 미래에 다가올 이슈가 아니라 현재 이슈”라며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저출생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성공한 선진국 사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합계출산율(1.83명)을 기록 중인 프랑스는 결혼과 동거의 중간 형태인 시민연대계약(PACS)을 제도화해 이 계약을 맺은 커플에 대해선 조세·사회보장 등에서 법적 부부와 같은 수준의 혜택을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진심으로 인구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과 생활동반자법 제정 등을 통해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과제부터 추진해야 한다. 전통적 혼인제도와 가족이데올로기가 해체되는 시대, 새롭고 유연한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일부 보수적 종교계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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