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헌·위법’ 시행령으로 경호처 강화, 시대를 되돌릴 셈인가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구역 내 투입된 군과 경찰 인력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고치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 개정으로 위헌·위법하게 경호처 권한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호처의 시도에 군과 경찰 모두 반대 의견을 표했다.

지난 9일 공개된 대통령 경호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보면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경호처는 “경호 공백을 방지하고 빈틈없는 경호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헌법은 국가기관의 행정권한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다. 대통령 경호법에 따르면 경호처장은 경호처 업무를 총괄하며 경호처 직원과 파견 공무원들을 지휘·감독할 뿐이다.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경호처장이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경호구역에 있다고 해서 관계기관 공무원의 지휘·감독 권한까지 모두 경호처장에게 위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상위법을 그대로 둔 채로 시행령을 고쳐 경호처장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위헌·위법하다고 할 수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러한 취지를 담아 의견을 회신했다. 경찰청은 “경호처장에게 지휘·감독 권한 부여 시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관계기관을 대등한 기관이 아닌 지휘계통에 속하는 하급기관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국군조직법과의 충돌 소지도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그 권한을 위임받은 소속 부서의 장에게 있다. 국방부는 현 법률하에서 경호처장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1963년 대통령 경호법 제정 이래 군·경찰에 대한 경호처의 지휘·감독권을 명시한 적은 없다. 지금껏 대통령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권이 명문화돼 있지 않아서 경호에 공백이 발생했다고 지적된 바는 없다.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기관들 사이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인해 경호공백이 우려돼 그런 것이라면 솔직하게 그렇게 얘기하고 국회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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