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국방 “베트남 민간인 학살 없었다”, 옳은 대응 아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17일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 장병들에 의한 학살은 전혀 없었으며, (한국 정부가 그에 대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당시 상황은 굉장히 복잡했기 때문에 한국군 복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한국군)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며 “당시 미군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부가 그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아왔던 데다 군의 사기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한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전 참가자 증언 등을 두루 살피며 내린 법원의 판단을 정부가 부정하고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전혀 없었다’는 표현까지 동원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이 장관은 ‘당시 미군이 한국군의 학살이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지만 피해자 소송 대리인은 “미군이 동맹군인 한국군이 부인하는 상황에서 최종 결론을 유보한 것일 뿐 보고서에는 한국군에 의한 학살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가득하다”고 반박했다. 이 장관의 발언으로 양국 간 새로운 불씨가 만들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사과나 배상은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베트남이 승리한 전쟁이기도 하지만, 양국 관계가 이런 문제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수용한 법원 판단까지 부인하며 발뺌한다면 베트남 정부가 모른 체하기 어렵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해 이른 시일 내에 공식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보편적 가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현명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는데, 인권 외교를 중시한다면 좀 더 적극적이고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 장관의 판결 내용 부인은 일본과의 대응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국내 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정부가 베트남에 대한 우리 책임을 부인한다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명분이 사라진다. 베트남은 지난해 한국이 최대 무역흑자를 낸 교역국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한·베트남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과거사는 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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