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충돌이 국격에 맞는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면담 후 심화된 한·중 갈등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가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 태도가 있는지 의심된다.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불쾌해한다”고 말했다. “1880년대 조선 국정을 농단한 청나라 위안스카이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외교사절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사실상 중국에 대사 소환을 요구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무거운 대통령 발언이라는 점에서 외교적 퇴로를 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논평으로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 대표 앞에서 ‘미·중 경쟁에서 중국 패배에 돈을 걸면 후회할 것’이라고 한 말을 공개한 것은 부적절했다. 하지만 대응은 외교부가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것으로 족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14일 ‘외교안보를 총괄조정하는 국가안보실장이 주한 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맞지 않다’며 언급을 삼갔다. 싱 대사는 국가안보실장이 대꾸할 급도 아닌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스스로 나라의 격을 낮춘 셈이 된다. 여권이 한·중관계를 보는 시각은 구한말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문제는 윤 대통령의 싱 대사 비판이 외교를 국내 정쟁의 한복판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반중 정서가 강한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여권이 강조하는 ‘당당한 태도’는 미국·일본 앞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문제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정당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반대로 민주당은 중국엔 유화적이고, 일본에는 강경하다. 이것은 국내 정치적 시각으로 국제관계에도 관성적으로 임하는 데서 비롯된다. 외교를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나 종속변수로 보는 것이다. 모든 외교 사안을 그렇게 접근하면 한국은 미국·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이 다루기 쉬운 상대가 되고 국익은 만신창이가 된다.

한·중 정부는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고 국가안보실 차원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중이 언젠가부터 ‘상호존중’의 정신을 잃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터놓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대만 문제 등에서 너무 미국 쪽으로 기운 것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다뤄야 하고, 중국이 여전히 구한말 시각으로 한국을 내려다보는 측면이 있다면 그에 관해서도 얘기해볼 수 있다. 윤 정부는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좀 더 협력적인 한·중관계를 만들어나갈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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